'만수' 유재학(50ㆍ모비스) 대표팀 감독이 침체된 한국 농구에 새 반향을 일으켰다.
유 감독은 11일 막을 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16년 동안 풀지 못했던 숙제를 풀었다. 한국 농구의 몰락 원인과 아시아 농구 흐름을 정확히 짚은 결과였다. 역대 대표팀 중 최고의 조직력을 갖췄다는 찬사를 들을 만큼 하나로 뭉친 '유재학호'는 아시아선수권에서 3위를 차지해 1998년 그리스 세계선수권 이후 16년 만에 스페인에서 열리는 꿈의 무대(월드컵)를 밟을 기회를 얻었다.
한국 농구는 그 동안 색깔이 없었다. 프로 팀 우승 감독이 대표팀 감독을 맡는 방식으로 주먹구구식 운영이 이뤄졌다. 짧은 기간 안에 성과가 나올 리 만무했다. 그 때 그 때 대표팀 차출이 가능한 프로 선수 위주로 안일하게 대처했다. 세대 교체는 항상 말뿐이었다.
그러나 유 감독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12명 최종 엔트리 가운데 국제 대회 경험이 부족한 대학생 선수 5명을 포함시키는 파격적인 선수 구성을 했다. 현대 농구는 40분 풀타임 압박 수비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모션 오펜스가 추세다. 때문에 체력이 중요했다. 또한 내년 인천아시안게임을 염두에 둔 발탁이었다. 그 결과 김민구, 김종규(이상 경희대), 이종현, 문성곤(이상 고려대), 최준용(연세대)의 잠재력을 끌어 올릴 수 있었다.
유 감독은 또 특정 선수 의존도를 낮췄다. 주전과 비주전의 경계 없이 12명의 선수가 돌아가며 코트를 밟았다. 한 쿼터를 베테랑 위주로 구성하는가 하면 다른 한 쿼터는 '젊은 피'로만 꾸려 정반대의 색깔을 냈고, 중요한 순간에서는 신구조화를 이끌어냈다. 12명 전원이 뛰는 농구는 그 동안 한국 농구에서 볼 수 없었던 부분이다.
유 감독은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정보 부재에 골머리를 앓았다. 대한농구협회(KBA)나 한국농구연맹(KBL)의 전력 분석 지원이 이뤄지지 않은 결과다. 아시아선수권 전초전이었던 존스컵 대회에서 눈으로 상대 팀 전력을 확인하거나 지인에게 얻은 영상 자료를 본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늘 골칫거리였던 중국과 중동 국가들의 높이와 체격을 스피드와 조직력을 앞세워 극복할 수 있다는 해법을 보여줬다. 대표팀이 이번 대회에서 가장 재미를 본 것은 1-3-1 지역 방어다. 하이포스트에 1명, 가운데 3명, 골밑에 1명이 서는 수비 방법으로 아시아권에서 뛰어난 가드가 없다는 점을 노렸다. 외곽슛 봉쇄에 효과가 있고, 상대적으로 포스트가 허술할 수 있지만 촘촘한 수비 조직력으로 이겨냈다. 대표팀이 총 8경기 가운데 60점 이상을 내준 경기는 패한 이란전(76점)과 필리핀전(86점) 뿐이었다.
유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성적과 세대 교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국 농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내년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다. 2014년 9월19일 막을 올리는 아시안게임에 앞서 8월30일부터 9월14일까지 진행되는 농구 월드컵에서 기량과 조직력, 자신감 향상을 이끌어 내야 한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이후 12년 만에 아시아 정상을 노리는 한국 농구는 지금 유 감독을 주목하고 있다.
김지섭기자 on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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