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독재자'다. 2008년부터 5년째 트랙 위에서 라이벌 구도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자칭 2인자들은 다수 있지만, 그 앞에만 서면 오금을 펴지 못한다. '인간 번개' 우사인 볼트(27ㆍ 자메이카)가 다시 한번 100m 트랙을 지배했다.
12일(이하 한국시간) 새벽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제14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00m 결선. 볼트가 9초77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했다. 자신이 보유한 세계신기록 9초58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올 시즌 베스트이자 역대 17위에 해당하는 호기록이다. 볼트는 이날 최대 초속 2m까지 받을 수 있는 뒷바람 풍속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다. 오히려 앞 바람이 초속 0.3m로 불어 질주를 '방해'했다.
볼트는 이로써 세계육상선수권에서만 6개의 금메달을 따내 칼 루이스(미국)의 최다관왕(8개)에 2개 차로 추격했다. 대회 막바지에 예정된 200m(18일)와 400m 계주(19일)에서도 정상에 오르면 볼트는 칼 루이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칼 루이스가 1983년 헬싱키 세계선수권부터 1991년 도쿄 대회까지 8년 동안 장기 집권해 8개의 금메달을 따낸 반면 볼트는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부터 이번 대회까지 4년 만에 금메달 8개 획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순도 면에서는 볼트가 훨씬 앞서고 있다.
볼트는 올림픽에서도 2회 연속 (2008 베이징ㆍ2012 런던) 단거리 3관왕을 석권해 6개의 금메달을 손에 넣은 바 있다.
2011년 대구 대회에서 부정 출발로 실격을 당한 볼트는 당시의 악몽 때문인지 스타트 라인에서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볼트의 출발 반응속도는 0.163초. 결선 8명의 주자 중 5번째였다. 2위를 한 저스틴 게이틀린(32ㆍ미국)의 출발반응속도가 볼트와 같았다. 전문가들은 "볼트가 출발반응시간을 0.13초대로 앞당긴다면 9초55까지 바라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2009년 베를린대회에서 9초58 세계기록을 수립할 때 볼트의 출발반응 속도는 0.146초였다.
전날 폭염에 이어 폭우가 쏟아지는 변덕스런 모스크바의 날씨도 볼트의 번개 질주를 가로막지는 못했다.
트랙은 비를 흠뻑 머금고 미끄러운 상태였다. 레이스 도중 쓰러져 큰 부상이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 주경기장 하늘 위에는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가 번쩍이기도 했다. 6번 레인에 자리 잡은 볼트는 하늘을 향해 성호를 그으며 안정을 취했다. 출발 총성이 울리자 볼트는 용수철처럼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상대선수들은 이미 자신보다 한 걸음 이상 앞서 있었다. 80m까지는 게이틀린이 몸통 하나 정도로 선두를 달렸다. 그러나 볼트에겐 20m의 여유가 있었다. 볼트의 가속력이 불을 뿜자 게이틀린은 순식간에 뒤로 밀렸다. 때마침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쳤다. 게이틀린이 9초85로 은메달을, 네스타 카터(28ㆍ자메이카)가 9초95로 뒤를 이었다.
볼트는 "좀 더 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준결선 이후 다리가 근육통으로 불편했다"고 말했다. 게이틀린은 "볼트의 긴 다리가 내 오른쪽으로 지나가는 것을 봤다"며 혀를 내둘렀다.
한편 한국 경보의 간판 김현섭(28ㆍ상무)은 남자 경보 20㎞ 결선에서 1시간22분50초를 기록해 10위에 올랐다. 김현섭은 이로써 2011년 대구 대회 6위에 이어 두 대회 연속 '톱10' 진입에 성공했다. 한국 선수 가운데 두 대회 연속 톱10을 달성한 것은 남자높이뛰기의 이진택(1997년 8위ㆍ1999년 6위)에 이어 두 번째다. 김현섭은 그러나 자신의 최고기록(1시간19초31초) 경신에는 실패했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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