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별의별 병이 다 많다. 한번 찾아서 주워섬겨 볼까? 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피부질환 모겔론스병, 통풍과 비슷하게 바람만 살짝 불어도 큰 고통을 겪게 되는 CRPS(복합부위 통증증후군), 웃거나 울면 폐와 연결된 기도가 막혀 숨을 거둔다는 코넬리아 다란지 증후군, 안면신경 마비로 인해 표정을 지을 수 없는 뫼비우스증후군...
또 엘러스-단로스 증후군(피부 표피 밑의 결합조직에 이상이 생기는 희귀질환), 호모시스틴요증(아미노산의 체내 축적으로 발생하는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 바뎃 비들 증후군(야맹증으로 어려서 시력을 잃고 비만, 지능 저하, 성기능 장애 등이 나타나는 병), 나르콜렙시(발작적으로 수면상태에 빠지는 병), 이런 것들도 있다.
사람들의 생활이 복잡해질수록, 그리고 의학이 발달할수록 희귀병은 늘어난다. 예전엔 무슨 병인지 이름도 없던 것들이 의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새로운 이름을 얻고 있다. 이름을 붙였다고 해도 발병원인이 규명되고 치료법까지 개발된 건 아닌 질병이 여전히 많다.
무슨 죄를 지어 그런 병에 걸렸는지,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르고 억울하게 병사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희귀질환에 걸리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알아야 할 판이다. 가족 중에 그런 불치병 환자가 없는 게 정말 고맙고 좋은 일이다.
앞에서 말한 여러 질환과 비교하면 메니에르병 정도는 별 게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해서 그렇지 불치병도 아니고 희귀질환도 아니니까. 1861년 프랑스 의사 메니에르에 의해 처음 이름이 붙여진 이 병은 현기증, 이명, 난청, 구토, 울렁거리고 구역질이 나는데도 토하지 못하고 신물이 올라오는 오심(惡心), 목이 뻣뻣한 증세 등으로 나타난다.
아직까지 병리와 생리 기전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데다 고혈압 당뇨처럼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하는 지겨운 질환이지만, 당장 어떻게 되는 건 아니다. 무서운 것은 어지러워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지는 바람에 어딘가에 부딪혀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다.
어머니가 얼마 전 귀 속에서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나고 어지럽고 구토를 하는 바람에 응급실로 실려 가신 적이 있다. 두 군데 병원을 거쳐 받은 진단이 바로 메니에르병이었다. 지난 주말 보호자까지 불러 메니에르병 강의를 한다기에 병원에 가보았더니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좁은 지하 강의실이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그 강의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들은 말은 이런 것이다. 우리는 배를 타면 대부분 멀미를 하는데 뱃사람들은 왜 멀쩡할까, 늘 어지러운 곳에서 활동하다 보니 적응을 하게 된 거다, 그러니 현기증이 나는 병에 안 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 몸을 자꾸 어지럽게 해야 된다, 짠 음식을 피하고 술 담배도 끊어야 하지만 운동을 많이 하라, 특히 머리를 전후 좌우로 자꾸 흔들어라...
그거 참, 어지럽지 않으려면 스스로 어지럽게 하라는 말이네? 하지만 너무 자주 격렬하게 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나겠지. 뭐든지 지나치면 아니함만 못한 거지. 그러니까 생각이 날 적마다 귀엽게 도리도리 잼잼을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크게 다치지 않으려면 조금씩 다쳐보아야 되나? 술에 안 취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술을 자주 마셔야 되는 거 아닌가? 내 말이 맞나?
나는 왜 이런 식으로 자꾸 엉뚱하게 생각이 발전할까? 이런 사람은 강의를 들어봐야 헛 거겠지? 하기야 강의 들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병명이 또 헷갈리고 있다. 라니에르, 뤼미에르, 메니에르, 바리에르, 보니에르, 사리에르, 수니에르, 카리에르, 토리에르, 파리에르, 르메이에르...
임철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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