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피해 연안의 자원 부국인 아제르바이잔에 3조원대의 국산 무기를 수출할지를 놓고 정부가 딜레마에 빠졌다. 분쟁 당사국인데다 종주국이었던 러시아와의 관계악화가 우려된다는 정부 내부의 기류가 있기 때문이다.
11일 국회사무처 등에 따르면 지난달 9일(현지시간)부터 5박 7일 간 안규백, 진성준, 김광진(이상 민주당), 송영근(새누리당) 의원 등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전ㆍ현직 의원 5명이 아제르바이잔을 방문해 자파르 아비예프 아제르 국방부 장관을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아비예프 장관은 잠수함 2척을 비롯해 구축함 등 수상함과 고등훈련기(T-50), K-9 자주포, 공격용 헬기, 무인항공기, 사격통제 체제 등 다양한 종류의 무기체계를 한국으로부터 구매하고 싶다는 의향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매 의사가 있는 무기들의 가격을 모두 합치면 30억달러(약 3조3,000억원)에 이른다고 안 의원은 전했다.
이처럼 아제르가 거액을 들여 온갖 무기들을 도입하려는 것은 무엇보다 20년 가까이 자국과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아르메니아를 겨냥해서다. 두 나라 간 분쟁지인 나고르노-카라바흐는 국제법상 아제르 내 자치주지만 1994년 정전 뒤엔 아르메니아가 통치 중이다.
또 카스피해 자원 보호도 주요 목적이다. 카스피해는 아제르와 러시아, 이란,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5개국에 둘러싸인 내해로, 엄청난 양의 천연가스와 원유가 매장돼 있다.
아제르가 한국산 무기 구매에 적극적인 데에는 한국에 대한 호감이 크게 작용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한 민족 두 국가'로 불릴 정도로 친한 터키가 한국과 '형제국가'라는 점을 안 뒤 한국도 형제국가처럼 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분쟁국을 상대로 한 무기 판매가 적절한지는 우리가 검토해 볼 문제"라면서도 "아제르가 구매 의욕만큼은 매우 강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태도는 조심스럽다. 특히 외교부가 부정적 반응을 보이며 방산 수출 문제에 신중히 접근할 것을 국방부에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아제르 측이 한국 장관급 인사의 현지 방문을 제안함에 따라 안 의원 등이 김관진 국방부 장관에게 현지 출장을 권했으나 김 장관은 국내 사정을 이유로 난색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소식통은 "국방부 차관이 8~11일 아제르를 찾은 것은 양국 국방 교류협력 협정 체결이 명목이지만, 장관 대신 은밀히 수출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게 실제 목적"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렇게 대놓고 나서지 못하는 것은 특히 러시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제르는 옛 소련에 속했던 독립국가연합(CIS)국들 중 가장 노골적으로 친미ㆍ반러 성향을 드러내는 국가로 분류된다. 외교 소식통은 "러시아가 아르메니아를 자국 남부 캅카스 지역 장악력 유지의 지렛대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아제르의 군비 증강이 달가울 리 없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오종진 한국외대 터키아제르바이잔어과 교수는 "방산수출을 하기 위해서는 방어용무기부터 판매하는 등 '러시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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