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가 마침내 오늘자부터 정상 발행됐습니다. 지난 6월 15일 구(舊)경영진이 편집국 전면 폐쇄로 190명 기자들을 거리로 내몬 지 무려 58일 만입니다. 이제 기자들은 법의 결정에 따라 편집국에 다시 돌아와 정상적인 신문을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국민과 독자들이 한국일보를 믿고 지켜주신 덕분입니다.
돌이켜보면 기막힌 시간이었습니다. 경영의 탈법과 비리를 바로 잡으려는 기자들의 노력을 구 경영진은 부당인사로 짓밟고, 급기야는 용역인력까지 동원해 편집국을 전면 폐쇄하는 언론사상 초유의 폭거를 자행했습니다. 그리고 기자들이 배제된 신문이 버젓이 발행됐습니다. 한국일보 사태가 한 신문사의 내부 갈등을 넘어 우리 사회에서 언론의 존재의미와 저널리즘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묻는 중대한 계기로 받아들여진 이유입니다.
한국일보 기자들의 노력은 결국 구 경영주의 사법처리와 새로운 경영구조 모색 기회를 통해 그 법적, 사회적 정당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우리는 이를 언론기업도 우리사회 발전수준에 걸맞은 투명성과 합리성을 확보해야 하며, 그래야만 언론의 본래 가치도 실현할 수 있다는 무거운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이 짧지 않은 기간 한국일보는 실로 수많은 국민과 독자들로부터 격려와 지원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평소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던 숱한 독자들이 물심양면으로 힘을 보태준 것은 벅찬 감동이었습니다. "한국 언론사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하고 용기를 북돋아준 수많은 학자들, 한국일보 사태의 실상을 널리 알리고 직접 거리에 나가 일인시위까지 마다하지 않은 많은 문화인들, 옳은 길에 모처럼 여야를 가리지 않은 정치인들, 심지어 경쟁관계를 넘어 같은 가치를 지향하는 언론인으로서 격려해준 타사 동료기자들… 그 모든 분들께 진심 어린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일은 한국일보, 나아가 언론 전반에 대한 국민의 요구와 기대치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가 됐습니다.
이제 한국일보 기자, 구성원들은 신문을 정상화하면서 국민이 기대하는 언론의 바른 가치를 구현하는데 모든 역량을 쏟고자 합니다. 59년 전 전쟁의 폐허 속에서 창간하면서 세웠던 탁월한 사시(社是), '춘추필법의 정신, 정정당당한 보도, 불편부당의 자세'를 다시 한번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한국일보의 영원한 정신인 이 사시대로 어떤 정파나 좌우 이념에 휘둘림 없이 오직 중도적 입장에서 공정한 사회의 균형자, 올바른 최종 판단자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사실 대부분 기자들의 복귀와 참여로 일단 신문만 제 모습을 갖췄을 뿐, 한국일보의 완전한 정상화까지는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불가피했던 내부 상처와 갈등을 치유 봉합해야 하고, 어떤 안팎의 상황이나 조건에도 흔들리지 않을 안정적이고 투명한 기업시스템도 구축해야 합니다. 나아가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기술발달 속에서 신문, 언론환경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생존모델을 창출해내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변화의 양상과 속도가 어떻든 시시비비를 분별하기 어려운 정보범람의 시대로 갈수록, 치우치지 않는 한국일보의 가치는 더욱 귀하게 빛을 발할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어떤 험난한 도전에도 굳건하게 맞서 나아가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번 사태를 통해 확인한 국민과 독자, 각계의 격려와 성원이 한국일보의 가장 큰 자산이자 희망이 될 것임은 물론입니다.
끝으로 이유와 책임이 어디에 있든 이번 일로 크게 심려를 끼치고 한동안 제대로 된 신문을 전해드리지 못한 데 대해 국민과 독자 여러분께 머리 숙여 송구한 마음을 전합니다. 거듭 감사드리면서 앞으로도 변함없는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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