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가 어떤 신문이었던가. 누가 뭐래도 사회면 기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조간신문의 대명사이던 시절이 있었다. 뜨끈뜨끈하고 생동감 넘치는 기사들로 젊은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나는 50년대부터 지난 60년 동안 한국일보 지면을 빛낸 기자들 이름을 줄줄이 외울 수 있다."
"창간 이래 열혈 애독자"일 뿐이라는 김선주 전 한겨레 논설주간이 6월 18일 한겨레신문에 쓴 칼럼이다. 용역을 동원한 사측의 무력 조치로 한국일보 편집국이 폐쇄된 지 사흘만이었다. 180명 기자들의 이름이 한국일보 지면에서 사라졌을 때 역설적으로 한국일보라는 존재의 의미는 회자되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한국일보를 제자리로 돌려놓지 못하는 이 세상은 과연 정상인가"(변정수 출판평론가)라며 한국일보 사태에 주목하고 개입했다.
각계 인사들은 계주하듯 붓을 들어 '한국사회에는 이 신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설득하고 질타하고 두둔하며, 자신을 한국일보에 연루시켰다. 숨가쁘게 꼽아보자면 법률가 한승헌, 법학자 박홍규(영남대), 인문학자 이진경(서울과학기술대) 김경집(전 가톨릭대), 언론학자 조희연 최진봉(성공회대) 원용진(서강대) 이승선(충남대) 윤태진(연세대), 문학평론가 황현산(고려대) 이명원(경희대) 교수, 소설가 조정래 이순원 장정일 김애란 한유주 원재훈, 시인 김정환 함성호 손택수, 극작ㆍ연출가 이윤택, 영화감독 육상효, 출판인 김태진 김흥식, 출판평론가 한기호 변정수, 범죄심리학자 표창원, 정신과전문의 기선완씨 등이다.
'중도의 정론지가 자리잡기 힘든 우리나라'에서 "한국일보 기자들은 언론의 멀쩡함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이고, 미래"라고 추켜세워준 김정환 시인이 있었고, '한국일보의 엄격한 중도 노선에 자주 불편함을 느꼈다'는 이명원 교수는 "그럼에도 '입장주의'로 환원될 수 없는 사실의 불편함을 드러낸 기사와 칼럼은 한국일보의 아름다움이고 고유한 존재방식"이라고 썼다. 이 기고문들은 한겨레, 경향신문, 프레시안, 미디어오늘, 시사인 등에 실렸다.
진보 진영만이 아니었다. 중앙일보 이훈범 국제부장은 8월 4일자 칼럼에서 "용역을 동원해 기자들을 내쫓은 다음 통신 기사를 오려 붙이고 가짜 바이라인을 단 '짝퉁 신문'을 만든 순간, 언론인으로선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다"고 썼다. 한겨레와 경향신문뿐 아니라 조선·중앙·동아일보까지 포함된, 무려 26개 언론사의 막내 기수 기자들은 "언론 자유를 위해 소속 언론사의 이념과 성향을 떠나 결연한 마음으로 한국일보 선배기자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한다"고 그 순정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자사 홍보, 타사 비판'의 전통이 뿌리 깊은 한국 언론계의 풍토를 떠올려 보면, 일대 사건이다.
"우리에겐 사회 현실을 날카롭게 해부하면서도 시적 상상력으로 1면을 장식하는 놀라운 균형감각을 가진 신문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손택수 시인의 글에 호응하듯 문인들은 1인시위를 이어갔다. 소설가 공지영씨, 한국작가회의 소속의 아동문학가 안학수, 시인 양은숙 김성규 박완섭 고찬규 문동만 조정, 소설가 안이희옥, 극작가 최창근씨 등이 피할 길 없는 광화문광장의 폭염을 버티고 섰다. "유명하지 않아 죄송하다"며 오히려 기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몸이 불편한 안학수 작가는 오로지 이 시위를 위해 충남 보령에서 상경했다. 미안해하는 기자들에게 그는 말했다. "아유. 한국일보 기자들을 위해서가 아녀유. 다 한국사회를 위해서여유."
기자들이 쫓겨나 농성 중이던 신문사 건물 로비를 찾아준 이들의 면면은 기자들이 '나는 이토록 품이 넓은 신문의 기자였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한 것이었다. 새누리당 이재오 남경필 김용태 의원, 민주당 문재인 박지원 설훈 등 20여명의 의원, 정의당의 노회찬 대표와 심상정 의원, 무소속 안철수 의원…. 이념과 정파를 말 그대로 초월했다. 자못 낯선 풍경이었다. 황현산 김정환 김소연 권여선 신해욱 등 문인 20여명도 기자들을 찾아와 힘을 보탰다.
한국일보 전∙현직 직원 201명의 기업회생 신청을 접수한 서울중앙지법 파산2부가 경영진의 권한을 정지시킨 뒤 11일 신임 편집국장을 임명함으로써 통신사 기사를 베껴 채운 짝퉁 한국일보는 57일만에 사라졌다. 그동안 기자들을 목메게 하는 공통된 문장이 있었다. '신문을 만들고 싶다.'
마침내 기자들이 진짜 신문을 다시 발행하게 된 지금, 두렵고도 설레는 이 지면은 이렇게 물을 참이다. 누가 한국일보를 지켜냈는가. 누가 폐쇄된 편집국의 문을 열고 한국일보를 다시 서게 했는가. 앞장 서 싸우는 기자들의 무릎이 꺾일까 봐 겨드랑이 사이로 깊게 팔을 넣어 준 시민사회의 수다한 구성원들이 아니었다면, 한국일보의 정상화는 불가능했다.
한국일보에는 편이 없다. 중도의 숙명이다. 그러나 아무 편도 아니어서 이 신문을 편들어준 이렇게 많은 이들이 있다. 편들어야 할 이유가 "한국일보는 당신이 누구 편이었든, 억울하고 고통스런 처지에 몰렸을 때 유일하게 당신 말에 귀를 기울여줄 신문이기 때문"이라고 누군가 트위터에 썼다. 넘어진 한국일보를 일으켜 세운 것은 우리 사회의 이 같은 믿음이었고, 4·19 작가 최인훈의 속 문장을 빌자면, 그것은 이 신문의 기자들이 처음으로 겪어본 "갈비뼈가 뻐근할 정도의 보람"이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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