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여름부터 1년 가량 한국일보에 '시로 여는 아침'을 연재했다. 아침마다 아름다운 시를 소개하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이다 보니 열심히 썼다. 어느 모임에서 만난 젊은 평론가 한 사람이 글을 잘 읽고 있노라고 말했다. 마음의 섬세한 결이 느껴지는 글을 써서 내심 좋아하던 동료였다. 나는 "한국일보 보시나 봐요?"라고 물었다. 그는 오래 전부터 구독하던 신문인데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아 객관적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대답이 그의 온화하고 조용한 성격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문학하는 사람들은 작가나 평론가나 장르 불문하고 대체로 아주 뜨겁거나 아주 차갑다. 펄펄 끓는 것처럼 격정적이거나 모든 걸 꽝꽝 얼어붙게 할 만큼 냉정하고 냉소적이다. 이 과도함을 나는 아름답다고 느끼고 세상이 돌아가는 데 필수적인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일보 기자들이 지난 6월 15일 사측의 편집국 폐쇄로 편집권을 빼앗긴 사태의 전모를 들었을 때, 나는 우선 그들의 인내심과 온순함에 놀랐다. 사주 일가의 경영 실패, 무능, 횡령, 배임이 그렇게 긴 세월 동안 계속되었는데도 기자들은 끊임없이 양보하고 참아주었다. 자본금 500억원 이상을 증자해서 경영을 정상화하고 중학동 사옥 부지를 재개발해 새 출발하겠다는 장재구 회장의 약속을 10년도 넘게 진심으로 믿었던 것이다.
결국 이 믿음은, 2011년 새해 첫날 1면에 올해는 중학동 새집으로 이사한다고 알리면서 설레어 하던 전 직원들의 기대를 장재구 회장이 참혹히 부숴버린 뒤에야 끝났다. 장 회장이 새 사옥에 입주할 권리를 몰래 팔아 넘겨 200억원의 손해를 끼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 장구한 거짓말의 세월 동안 기자들이 편안하게 신문을 만들었을 리는 없다. 최근에는 취재비, 통신비, 특파원 체재비도 1년 넘게 지불하지 않았다고 한다.
연재를 하는 동안 외부 필자들에게도 원고료가 제때 지급되지 않았다. 한국일보처럼 큰 신문사가 1년씩이나 원고료를 계속 미루는 걸 보고 모두들 놀랐다. 다들 크게 독촉하지 않았던 것은 담당기자들이 마치 자신들이 큰 빚을 지기라고 한 듯 거듭 미안해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석에서도 사주의 무능을 비난하는 대신 종이신문이 많이 어렵다고, 언론인으로서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해야 할지 고민이라며 괴로워했다.
그러던 기자들이 결국 배임 혐의로 장재구 회장을 고발했다. 이에 대해 어떤 이들은 노사갈등을 더 극단으로 몰아붙였다느니 한국일보를 접수하려는 불순 세력들의 음모라느니 떠든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이 고발에는 처벌보다는 치료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10년 넘게 계속 남이 하는 거짓말과 도둑질을 방기하는 사람은 없다. 한국일보 사원들은 사주를 한 가족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이 유지되는 데에는 어느 언론사보다도 기자를 존중하고 인간적 유대가 공고했던 한국일보의 분위기가 큰 몫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계속되는 거짓말을 믿어주고 참아주었던 것이다. 그러다 결국 도를 넘어 가족이 살려던 집을 통째로 팔아먹은 것을 보는 지경까지 온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자들의 양보와 인내심이 지나쳤다고 말할 정도다. 사실 노조의 고발 결정에서는 마음에 병이 든 자식을 소문내지 않고 집안에서 고쳐보려고 버티다 결국 병원에 보내기로 결정한 가족의 마지막 애절함 같은 게 느껴진다.
한국일보 노조의 투쟁에는 지나친 부분이 조금도 없다. 한국일보는 중도신문을 표방하면서, 끓어오르는 100℃의 맹목과 차가운 0℃의 냉소에는 거리를 유지해 왔다. 끓는점, 어는점만을 기준으로 삼는 이들의 눈으로 보면, 이 신문의 기조도 노조의 싸움도 지나치게 정중하고 미지근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 미지근함이 우리가 기자들의 편에 서서 이들을 지지하고 도와야 하는 이유이다. 사람들이 지켜져야 한다고 믿는 최소한의 상식, 가장 온순하고 이해심 많은 사람들조차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진실을 걸고 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36.5℃를 유지하려는 이 투쟁의 온도가 우리 사회의 상식의 체온이기 때문이다.
진은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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