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최대 미디어 그룹 중 하나인 페어팩스 미디어는 지난해부터 격랑 속에 놓여있다. 시련은 광산 개발로 부를 쌓은 여성 갑부 지나 라인하트가 그룹의 최대주주가 되면서 시작됐다. 라인하트는 19%의 지분을 지렛대 삼아 이사회의 세 자리를 요구하며 편집권 개입 의사를 노골적으로 시사했다. 광산업에 대한 세금 확대에 나선 노동당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던 라인하트가 언론을 광산 사업을 위한 전위대로 활용하려 한다는 우려가 회사 안팎에서 제기됐다.
페어팩스 미디어가 발행하는 호주 유력 일간지 시드니 모닝 헤럴드와 디 에이지 등의 소속 기자들은 이에 즉각 반발했다. 라인하트의 움직임이 오래 전 마련한 그룹의 '편집 규약'을 휴지조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호주 사회에서는 광산 재벌이 유력 언론을 손에 쥐고 광산업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광산일보'를 만들려 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호주 정부도 비판의 물결에 합류했다. 스티븐 콘로이 통신부 장관은 "라인하트가 편집권에 개입한다면 독자들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며 편집 규약 준수를 촉구했다. 회사 안팎의 비판과 반발에도 편집권 장악을 위한 라인하트의 전횡은 현재진행형이다.
페어팩스 미디어의 시련은 언론 선진국에서도 편집권 독립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 가늠케 한다. 선진국에선 페어팩스 미디어가 겪고 있는 편집권 훼손 사태를 막기 위해 소유권 분산 등 오래 전부터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다. 가디언의 사주였던 존 스코트는 1936년 비영리 재단을 만들어 소유권을 넘기며 가족 소유체제를 종식시켰다. 재단은 경영에만 전념하고 있으며 기자들이 편집국장 후보를 복수로 뽑으면 그 중 한 명을 지명하는 정도로만 편집권에 간접적 의사표시를 한다.
독일 신문 프랑크프루터 알게마이네 차이퉁도 대주주들이 1950년대 비영리재단에 보유주식을 출연해 경영자의 편집권 개입을 원천 봉쇄했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와 주간지 옵서버는 경영과 편집을 분리하기 위해 편집위원제를 실시하고 있다. 사원지주제로 운영되는 프랑스 르몽드는 외부 주주의 경우 편집권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받으며 경영진이 편집권을 훼손하는 결정을 내릴 경우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스웨덴 일간지 다겐스 니이헤테르는 사장과 대등한 업무협조 관계인 편집책임자를 기자조합에서 선출하도록 해 편집권 독립을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유력 언론사들의 편집권 독립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럽의회는 2008년 편집권 훼손을 우려하는 보고서를 채택했다. 신자유주의와 미디어 융합의 물결을 타고 미디어 소유 집중이 가속화하면서 이 같은 편집권 독립이 갈수록 위태로워지고 있다는 우려에서다. 유럽의회는 이 보고서에서 언론사주와 대주주, 정부의 편집권 개입을 막기 위해선 편집 규약이 더 널리 채택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