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이야기'를 중단하고 있던 지난 7월, 몽골을 다녀왔다. 내가 며칠 머물던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은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는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같은 인사말이 너무 길고 발음이 어렵다며 가볍게 불평했다. 나는 친한 사이끼리는 '안녕'이라 할 수도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만날 때랑 헤어질 때 똑같이 말한다고요? 왜요?" 왜냐니. 그냥 그렇게 쓰는 건데 무슨 이유가 따로 있담. 나는 어정쩡한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 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고, 주인은 숙소를 떠나는 나에게 '안녕'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의 '안녕'에서 굿바이의 느낌이 나지 않아 어색했다. 이 인사, 좀 묘하구나. 그날은 종일 안녕, 안녕, 을 속으로 되뇌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그 '안녕'을 입에 올려본다. 헤어짐과 만남의 뜻을 포개어 이렇게 인사해 본다. 안녕, 한국일보. 이 지면을 접고 있던 지난 두 달 간은 내가 한국일보의 역사에 대해, 신문 발행의 매커니즘에 대해 이모저모 공부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한국일보가 지난했던 한 시절과 제대로 '안녕' 하고 멋진 새 출발로 '안녕' 하길 마음 깊이 기원하게 되었다. 한결 더 예리하고 꼿꼿해질 수 있도록. 먼 훗날 내가 한국일보에 글을 연재했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레 여길 수 있도록. 안녕. 오늘 아침은 이 인사가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시인 신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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