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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8월 10일] 윤봉길과 일본의 항복조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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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8월 10일] 윤봉길과 일본의 항복조인식

입력
2013.08.0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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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1914~1996)는 전후(戰後)를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전후 정신의 지주로 불린다. 그는 2차 세계대전후의 일본 정치학의 열쇠가 된 2가지 질문, 즉 '왜 우리들은 이러한 실수를 범한 것인가, 미국 유럽의 민주정치의 비밀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주도적으로 대답한 정치학자다. 그는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의 발전에 대해선 국가에 의한 중앙 집권화가 시민적 저변의식의 확대나 사상의 외연을 넓히는 효과를 가져오지 않았으며, 사회도 초기 근대 상호 차단적인 집단의 병폐에 의한 왜곡이 발생했다고 갈파했다. 거기에 일본 근대의 병리가 있으며, 그것이 일본 근대의 실패를 초래했다고 통렬히 반성했다. 또한 1930~40년대의 황국의 사명론과 일본 군국주의의 무한한 도덕적 미화라는 정신적 태도야 말로 근대성의 일탈 또는 탈선으로 규정했다. 말년의 마루야마는 일본인의 유치하고 위험한 사고방식을 천황제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아베 신조 총리나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 같은 이들의 최근 망언을 보면서 1945년 9월2일 미조리호 함상에서의 일본 항복조인식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없다.

그날 오전 도쿄만에 정박한 미조리호 함상에서 일본이 항복문서에 조인하는 항복조인식이 거행됐다. 이때 일본정부를 대표해서 일본 외상 시게미스 마모루와 우메스 미치로 육군 참모총장이 서명했다. 일본 대표가 서명한 뒤에 미국을 비롯한 중국, 영국, 소련,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프랑스, 네덜란드, 뉴질랜드 승전국 대표들의 서명이 이어졌다. 불행히도 여기에 한국 대표는 없다. 프랑스의 경우 전쟁 초반 독일에 항복해 승전국으로서 크게 기여 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드골의 자유프랑스군이 프랑스 대표가 되어 승전국의 지위를 얻어내 참석했다. 한국은 애국자(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시게미스 외상의 다리를 절게 만들었다는 내용이 나왔지만, 그 대표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항복조인식을 촬영한 뉴스 릴은 미국 정부의 항복조인식 장면의 역사적 공식 기록이다. 역사적인 이 필름에서 윤봉길 의사가 소개됐다. 시게미스가 전함 미조리호에 올라오는 순간의 설명에 귀 기울이면, 그가 그로부터 10여년전 중국 상하이에서 한국 애국자에게 폭탄을 맞고 중상을 입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국의 애국자 윤봉길 의사.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은 세계인에게는 낯선 단어였다. 알게 모르게 뉴스 릴은 한국 민족이 일본인의 식민통치에 저항하고 독립을 위해서 투쟁하였다는 사실을 세계에 홍보했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일본항복 장면은 수십개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다.

19세의 나이에 이미 농촌계몽운동에 뛰어든 윤봉길 의사. 야학당을 개설하여 한글 교육 등 문맹퇴치와 민족의식 고취에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계몽운동만으로는 독립을 이룰 수 없다는 한계를 인식하고 중국으로 망명길에 오른다. 그곳에서 백범 김구를 만난 의사는 의열투쟁에 뜻을 모으고 한인애국단에 가입, 김구와 함께 홍구공원 거사를 계획한다. 1932년 4월29일 상하이 홍구공원의 의거로 시라가와 대장과 해군총사령관인 노무라 중장, 우에다 중장, 여기에 항복조인식의 일본외상 주중공사 시게미스 마모루, 일본거류민단장 카와바다 등 침략의 원흉들을 혼내줬다. 이는 널리 알려져 중국의 한인독립운동 지원과 임시정부 활성화 이후 독립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에서 한국의 무조건 독립이라는 의사결정(장개석 중국 대표의 적극적 의사표명)에 지대한 영향을 줬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후 미조리 함상에서의 한인 애국자로 소개되는 윤봉길 의사, 그의 나이 25세였다.

오늘날 과거 역사를 망각한 채 망언을 일삼는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은 항복조인식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각국의 대표들이 서명하기에 앞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 흘리고 희생하였는지를 알고 있다면 사죄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지금 분명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

윤창규 동아시아센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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