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비서실장과 민정· 미래전략· 고용복지 수석 등 청와대 비서진을 일부 교체했다. 비서실장이 포함된 사실상의 물갈이는 정부 출범 5개월 만이니 이른 감이 있다. 그만큼 새로운 출발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 시절 법무장관을 지낸 이를 비서실장으로 기용한 청와대 개편으로 국정 추진에 얼마나 힘을 받을 수 있을지 솔직히 걱정이 앞선다.
비서진 쇄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은 옳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윤창중 사건을 비롯해 정권 출범 이후 이어진 인사 난맥과 국정원 사태 등이 얽힌 정국 대처와 관련해 허태열 비서실장의 책임을 물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사 검증 실패에 책임이 있는 민정수석을 바꾼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미래전략 수석은 국정 화두인 '창조경제'를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
문제는 물갈이의 내용이다. 무엇보다 쇄신 인사의 핵심인 김기춘 새 비서실장은 일반에 기억조차 희미한 옛 인물인데다, 야권의 거센 비판을 받을 이력을 지녔다.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에 3선 의원을 지낸 그는 능력과 경륜이 출중하다지만, 1992년 대선 때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음모' 논란을 부른 초원 복집 사건에 연루됐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국회 법사위원장을 지낸 것도 소홀히 여길 수 없는 불씨다.
게다가 5· 16 장학생 출신으로 박 대통령의 오랜 측근이라는 사실까지 보태면, 국정 쇄신에 앞서 당장 정국 폭발의 도화선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가뜩이나 과거에 매달리는 비판 세력에게는 대통령을 공격할 좋은 빌미가 될 만하다. 두 달이나 비워뒀던 정무수석 자리에 외교관 출신을 발탁한 것은 이런 우려를 더한다. 그의 정무 역량은 알 수 없으나, 강성으로 알려진 최측근 인사의 비서실장 기용과 겹쳐 야당과의 유연한 소통보다 거꾸로 정면 돌파를 꾀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아무튼 이런저런 걱정이 지나친 기우이길 바란다. 국정 운영을 다잡기 위해 비서진 개편을 단행했다면, 원활한 국정 추진에 반드시 필요한 야당과의 대화와 협조에도 성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청와대 개편이 정국 타개를 위한 여야 대표와의 3자회담 추진과 맞물린 점을 주목하고 기대하고 싶다.
김기춘 실장도 비서실장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대통령의 정책 아젠다를 정부와 국회에 무리 없이 관철하는데 있다는 사실을 유념하기 바란다. 대통령의 정치적 이익을 돌보는 역할을 앞세우다보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음을 늘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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