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폭염과 긴 장마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휴가가 보약이다. 직장인들의 휴가는 제도적으로는 1년 아무 때나 쓸 수 있지만, 아무래도 한여름철의 휴가가 제격이다. 지난주부터 이번 주까지가 아마도 휴가의 절정기가 아닐까 싶다.
1주일 이상 해외로 떠나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생업에 쫓기고 돈도 없어 하루나 이틀 정도 쉬는 사람들도 많다. 아예 휴가 없이 일을 해야만 먹고사는 사람들은 이 계절이 얼마나 따분하고 원수 같을까.
그런 사람들에게 연말 불우이웃 돕기처럼 한여름 ‘휴가 기부’는 누가 좀 안 해주나. 그런 사람들에게는 모두가 다 쉬는 연휴도 반가운 게 아니라 지겹고 걱정스러울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들, 스스로 벌지 못하면 굶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연휴도 무섭다.
직장에 다닐 때는 월급날이 왜 이렇게 더딘가 싶지만, 조그만 사업이라도 하는 사람들에게는 월급날이 그렇게 빨리 돌아올 수가 없다. 직원들 월급을 주고 돌아서면 바로 또 월급날이다. 일하는 달이 적은 2월과 같은 때는 더욱 월급 주기가 아깝다. 월급 주는 사람에겐 긴 연휴가 반갑기만 한 게 아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더 놀까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 그래서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게 2044년의 연휴다. 10월 1일 토요일부터 10일 월요일까지 열흘을 쉬자는 주장인데, 내역은 이렇다. 1, 2일은 주말이니 당연히 쉬고 3일은 개천절이니 공휴일, 4~6일 추석연휴를 하고 보면 7일 금요일이 된다.
이날 하루를 어찌어찌 쉬면 8, 9 토, 일요일로 이어진다. 그러면 월요일인 10일엔 맘 고쳐먹고 새로운 자세로 출근해야 할 거 아냐? 그런데 그러지 말고 까짓 것 10일도 무슨 재량휴일 그런 걸로 쉬기로 하면 열흘연휴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열흘을 쉬어보자고 해서 나온 이야기다.
2044년이면 지금부터 무려 31년 뒤의 일이다. 말하기 좋아하는 친구들은 이런 ‘연휴구상’에 심지어 ‘내가 2044년까지 살아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까지 붙이고 있다. 나 같은 사람은 아무래도 그때까지 살아 있지 못하겠지만, 열흘 연휴를 맛보려고 오래 살고 싶은 생각도 없다.
2044년 이전에도 장기연휴를 할 기회는 있다. 나이 많은 노인들은 1년 내내 연휴니 의미도 없겠지만, 하여간 알아보자. 우선 2017년에 잘하면 열흘을 쉴 수 있다. 9월 30일 토요일에 쉬기 시작해 10월 1, 2일을 지나면 개천절인 3일 추석연휴가 5일까지 이어진다. 그 다음 6일을 쉬면 또 7, 8일 주말에다 10월 9일 한글날이 닥친다. 그러니까 월요일인 2일과 금요일인 6일을 쉬자는 얘기인데, 연휴 중간에 낀 날이니 충분히 쉴 가능성이 있다.
그런가 하면 2025년에는 10월 3일(금) 개천절부터 4일 토요일, 5~7일 추석연휴가 이어진다. 8일 수요일만 쉬면 9일 한글날까지 7일을 쉬는 데 이상이 없다. 2031년엔 9일을 쉴 수 있다. 9월 27일, 28일 토 일요일을 쉬고 29일 월요일만 어떻게 하면 30일(화)부터 10월 2일까지 추석연휴에 3일 개천절 4일 토, 5일 일요일이 된다. 2044년처럼 이때도 6일을 노는 걸로 해 열흘연휴를 만들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올해에는? 추석연휴인 9월 18일(수)~20일에 이어 21일 토, 22일 일요일까지 5일을 쉴 수 있다. 5일도 결코 짧은 게 아니다. 특별한 계획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명절연휴가 정말 고역이다. 가족들 얼굴이나 TV만 보면서 닷새를 어떻게 지내겠어? 현충일은 지났지만 광복절, 개천절도 다 목요일이라 금요일에 휴가를 받으면 나흘 연휴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즐겁고 신나게’ 장기연휴를 미리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13년의 저주’가 정말 저주스럽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설날과 추석 연휴가 주말과 겹치는 현상이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이어지는 걸 말한다.
2007년 설 토일월, 2008년 추석 토일월, 2009년 설 일월화, 추석 금토일, 2010년 설 토일월, 2011년 추석 일월화, 2012년 설 일월화, 추석 토일월, 2013년 설 토일월, 2014년 추석 일월화, 2015년 추석 토일월, 2016년 설 일월화, 2017년 설 금토일. 누군지 몰라도 이런 걸 맨 먼저 발견해 알리는 사람은 천재나 마찬가지다. 놀랍다.
그런데 사실은 이게 ‘13년의 저주’가 아니라 ‘11년의 저주’다. 정확하게 말하면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1년 동안 13번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건데, 저주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13년이라고 과장한 것이다. 나는 이런 일을 찾아내지는 못하지만 잘못된 건 알아낸다.
임철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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