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격량을 헤쳐오면서 우리경제는 왠만한 충격에는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현상의 이면에는 보다 깊은 고민이 존재한다. 우리경제가 활력을 잃어가는 좀비경제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2%대의 성장세 유지도 힘들어 보이는 데다 고용창출을 이끌어낼 성장엔진이 좀처럼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생산성이 낙후된 부문의 생존을 위해 귀중한 재원이 우선 동원되는 실정이다. 더욱이 미래가 불투명해지면서 각자도생의 몸부림이 서민경제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책의지가 재삼 확인되지만 목표와 현실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자산버블붕괴이후 20여년의 장기침체를 겪고 있는 일본경제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미래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문제가 심각한만큼 처방은 더욱 어렵다. 당장 어려운 부문을 지원하는 것과 미래에 대비하기 위한 투자에 나서는 것은 엄연히 상충관계로 인식되기 쉽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투자대신 추가 부실의 확산을 막으려는 노력들이 대세이다. 자산가격 하락에 대한 기대는 담보체계를 손상시키면서 거래형태마저 전세나 월세위주로 전환시키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를 떠받치고 있는 자산의 질적 저하를 막기 위한 건전한 자금의 순환은 찾아보기 어렵다. 집단적 도덕적 해이와 시장실패가 자산버블의 원인으로 주목받는 여건하에서 금융권의 쏠림현상은 여전하다. 정책적 배려와 시장보완적인 노력은 상황안정이라는 효과 이상의 후유증을 곳곳에 남기고 있다.
더 이상 칸막이식의 단기대응만으로는 시스템 차원의 위험관리가 불가능하다. 옥석구분이 어려워지는 극한상황에서 거시처방만으로는 모두가 어려워지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 이 와중에 구조조정 대상기업들은 좀비경제의 확실한 구성원으로 발을 디뎌놓고 있다. 시장퇴출이나 구조조정이 순환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인식될 수 없는 현실로 인해 우리경제는 되는 것도 안되는 것도 없는 복잡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좀비경제의 핵심은 미래성장의 가능성이 질식되고 사장되는 자원배분의 실패이다. 이는 결국 건전한 자금의 순환을 일으키는 금융기능이 자체적 장애물의 누적으로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금흐름을 뒷받침 하는 제도나 법체제, 그리고 시장기구나 감독기능의 저하, 그리고 심리적 진폭의 확대도 원인으로 작용한다. 기존 사회지배구조의 생존이 우선시되는 배경도 좀비요인의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이미 2008년이후 글로벌 금융체제가 망가진 이래 비상체제로 연명한 세계경제는 여전히 좀비경제의 기본 가정인 양적완화기조(QE)에 의존해있다.
좀비경제의 확산을 막고 앞으로 다가올 글로벌 충격에 대비하려면 보다 미래지향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우리 스스로 좀비경제의 확산에 인질로 잡히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반석같은 기초로 미래를 다지려면 모든 것을 살리려는 노력보다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과 구조조정의 선별과정을 통해 자산가치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 다변화된 자금흐름을 막고 있는 제반 좀비요인들을 미래의 성장동인으로 개조하면서 선순환의 구도위에서 민간들이 미래를 스스로 준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가야 한다.
둘째, 향후 본격적 조정 충격에 대비하기 위한 정책대응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 자산버블의 조정이 불가피하지만 이를 시장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여건이 장기화될 경우 좀비경제의 확산을 막기 어렵다. 창조경제를 키우는 노력과 구조조정을 병행시킬 수 있는 기회발굴을 통해 전환비용을 줄이면서 미래투자에 나서야 한다. 귀중한 재원이 생존할 수 없는 부분에 무작정 동원되는 상황은 지양해야 한다.
둘째, 비기축통화국으로서 고령화추세에 대비하기 위한 다양한 금융자산의 공급이 이루어져야 한다. 부동산과 미재무성 증권 위주의 자산구성만으로는 우리의 미래를 대비하기 어렵다. 이를 위한 제반 전제조건의 충족은 강력한 정부주도가 아닌 민간들의 자발적 시장참여 확대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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