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를 마치고 청와대로 돌아온 박근혜 대통령 앞에 묵은 설거지거리 마냥 난제가 가득하다.
9월 정기국회에서 민생 관련법과 예산안 등 처리를 시작으로 민생정부의 토대를 구축한다는 게 집권 1년 차 하반기를 맞는 박 대통령의 구상이었지만 이대로라면 첫걸음 떼기도 쉽지 않다.
우선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국정조사 파행의 여진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이미 4일로 장외투쟁 나흘째에 들어가며 박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김한길 대표는 3일 경색 정국 타개 방안으로 박 대통령과의 단독 회담을 전격 제안하는 등 공세의 초점을 오롯이 박 대통령에게 맞추고 있다.
공세도 공세이지만 여야 대치가 길어지면 박 대통령의 하반기 국정 운영은 여러 면에서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하반기엔 국회 협조를 얻어야 할 일이 많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국정조사를 둘러싼 여야 대치는 정치권이 풀어야 할 사안’이라는 기본 입장을 당분간 고수할 태세다. 박 대통령은 이미 국정원 댓글 의혹에 대해 “정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며 국정원의 자체 개혁을 주문하면서 여야의 철저한 국정조사와 재발 방지, 조사 후 민생에 주력 등을 요청했으며, 그 이후 상황 변화가 없다는 게 청와대의 기본 인식이라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민주당 김 대표의 단독회담 제안 등에 대해 가타부타 입장을 밝히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청와대의 대응은 민주당의 장외집회가 ‘대선 불복’으로 비칠 소지가 적지 않은데다 국민의 관심도 크지 않다는 판단을 깔고 있다. 물론 이 경우 ‘청와대에 정치가 없다’는 비판론이 비등할 수는 있다. 때문에 사태가 더 악화하기 전에 박 대통령이 침묵을 깨고 상황 정리를 시도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결렬 위기로 치닫는 개성공단 문제의 대처도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남북 경색이 장기화할 경우 비판의 화살이 박 대통령에게 향할 수 있고 ‘남남대치’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개성공단 문제와 관련해선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칙과 신뢰의 주춧돌을 놓아 남북관계 정상화의 기틀로 삼아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원칙이 꽤나 확고해 보인다. 따라서 북한의 태도 변화에 초점을 맞추되 대화의 문은 열어두는 스탠스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일본 정부 인사들 사이에서 최근 잇따라 불거진 역사왜곡 발언이나 망언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은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오는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 정부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는 강한 메시지가 담길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일자리 창출을 비롯한 경제난 대처와 해법 제시도 박 대통령의 뇌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사안이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