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은행권에서 일제히 출시되는 대출 상품 '목돈 안드는 전세'는 '렌트푸어' (주택 임차 비용에 고통받는 계층) 구제책이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전세값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4%대의 상대적으로 싼 이자로 자금을 빌려줘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전세 수요가 넘치는 상황에서 집주인이 과연 얼마 안 되는 세금 혜택을 보려고, 이런 복잡한 절차를 받아들일 지, 오히려 전세난을 부추기지나 않을 지 회의적인 견해도 나오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2012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소득의 30% 이상을 집세로 쓰는 '임대료 과부담 가구'는 238만4,000가구로 추정됐다. 2년 전보다 48만2,000가구(25.3%)가 늘어난 수치다.
이 가운데 전세가 68.0%(162만1,000가구)로 가장 많고, '반전세'로 불리는 보증부 월세가 27.7%(66만1,000가구), 월세가 4.2%(10만1,000가구)다. 전세 세입자의 42.8%, 보증부 월세 세입자의 20.4%, 월세 세입자의 23.1%가 소득의 30%가 넘는 집세를 부담한다.
전세를 얻으면서 금융권에 지는 빚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신한·국민·우리·하나·농협·외환 등 6개 시중은행의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최근 2년 새 약 2.7배로 늘었다.
전국 주택의 전세가격도 2008년 말 대비 30.98% 상승했다. 같은 기간 매매가격 상승률인 10.21%의 3배에 이른다. 전국의 아파트 전세가격 상승률은 올해 상반기에만 2.75%에 달한다. 아무리 돈을 벌어도 전세가격을 따라잡지 못해 전세자금을 마련하느라 허덕이는 이들이 결국 '렌트푸어'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셈이다. '하우스푸어'(주택담보대출을 갚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 대책에 집중했던 정부로서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이런 '렌트푸어' 문제를 잡으려고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다음 달 출시되는 '목돈 안드는 전세 Ⅰ·Ⅱ'다.
'목돈 안드는 전세 Ⅰ'은 집주인이 자신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임차보증금처럼 손에 쥐는 대신 세입자가 이자를 내는 방식이다. 가령 보증금 1억2,000만원에 전세를 살다가 3,000만원을 올려 재계약해야 하는 경우 집주인이 3,000만원을 대출받고, 이에 대한 이자(금리 연 5% 적용시 월 12만5,000원)를 세입자가 내는 구조다.
가장 큰 위험은 세입자가 이자를 연체하거나 아예 내지 않는 일이다. 이 때문에 집주인이 연체자가 될 위험이 있어 대한주택보증이 보증을 선다. 담보인정비율(LTV)은 최대 70%다. 세입자 대신 대출을 받는 집주인은 전세보증금에 대한 소득세 비과세 혜택과 이자 납입액의 40%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을 본다. '목돈 안드는 전세 Ⅱ'는 전세를 구하는 세입자가 2년 뒤 보증금을 돌려받을 권리인 보증금 반환청구권을 은행에 넘기고 전세자금대출 금리를 낮추는 방식이다. 임차보증금 한도범위내에서 대출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회의론도 있다. 특히 '목돈 안드는 전세 Ⅰ'의 경우 공급자 중심인 전세 시장에서 과연 집주인이 소득공제와 소득세 감면 혜택만 노리고, 세입자를 위해 대출하는 수고를 자청할지가 가장 큰 문제다. 집 값이 내려 기존 대출의 LTV가 70%에 육박하면 추가 대출을 받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노희순 주택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목돈 안드는 전세'가 오히려 전세 선호 현상을 부추겨 전세 수요를 늘릴 수도 있다"며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전세 수요를 매매시장으로 분산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정부가 주택을 보유, 거래하는 과정의 부담을 덜어주고 많은 혜택을 제공해야다"고 권고했다.
정승양기자 s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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