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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넥타이 이야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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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넥타이 이야기(중)

입력
2013.07.29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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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넥타이를 처음 맨 건 대학교 4학년이던 1973년 봄, 어느 고등학교에 교생 실습을 나갈 때였다. 그때 신사복을 난생 처음 입은 건데 넥타이를 맬 줄 몰라 하숙방에서 혼자 오래 낑낑거린 기억이 새롭다. 누구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면 될 텐데도 주변머리가 없어선지, 왜 그런지 물어보기가 싫어 스스로 터득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렇게 어렵게 넥타이를 매고 처음 거리에 나간 날은 세상사람 모두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아 어색하고 멋쩍기 짝이 없었다. 넥타이가 비뚤어지지 않았는지 수실 매만져보고 가다듬고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정확하게 40년 간 넥타이를 맨 셈이다.

이 기간에 얼마나 많은 넥타이가 내 손을 거쳐갔는지 헤아릴 수 없다. 언젠가 우리 집에 뭔가 수리하러 온 사람이 장롱 문을 열어보고는 아내에게 "이집 아저씨 연예인이지요?"하고 물었다고 한다. 아니다,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넥타이가 너무 많아서 연예인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연예인으로 오인될 만큼 야단스럽고 요란한 건 없지만 넥타이 숫자가 많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 내가 나를 위해 산 것은 거의 없다. 우선 가족들이 선물한 게 꽤 있다. 기자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이런 저런 계기로 받은 선물도 많다. 남자들에게 주는 선물이란 대개 넥타이 아닌가. 남들은 넥타이마다 알뜰한 사연과 이야기가 있는지 몰라도 나는 그런 정도는 아니다.

아버지가 처음 양복을 사줄 때 함께 받은 넥타이는 색깔과 무늬를 지금도 기억하지만 솔기가 튿어지고 너무 낡아서 버린 지 오래다. 그뒤 언젠가 또 한 번 아버지로부터 받은 넥타이는 지금도 건재하시다.

색깔과 무늬가 비교적 점잖고 무난해 한동안 애용했었다. 내가 싫어하는 넥타이는 뱀 껍질처럼 번들거리고 번쩍거리는 건데, 이런 걸 선물 받으면 백화점에 찾아가 바꾸곤 했다.

그런데 내 넥타이는, 그거 참 희한도 하지, 내가 밥을 먹으면 이놈도 꼭 받을 먹는다. 내가 낙지볶음을 먹으면 내 목에 걸린 녀석도 영락없이 혓바닥이 벌게지도록 낙지 먹은 티를 낸다. 앞으로 건들거리는 게 신경 쓰여 와이셔츠 안으로 반쯤 접어 넣어도 소용이 없다. 요즈음 넥타이를 거의 매지 않아 편하고 자유스럽지마, 음식 묻을 걱정을 하지 않아서 더 좋다.

많은 넥타이 중에서 내가 아주 애용하는 것은 30여 년 전 일본 갔을 때 사온 거 두 갠데, 이건 넥타이가 이미 감아져 있어서 와이셔츠 목 부위에 고리를 걸기만 하면 된다. 목덜미로 돌아가는 부분이 없다. 넥타이를 매고 감아 돌리는 게 영 귀찮았던 나를 위한 최신 간편 맞춤형 발명품 장치같았다.

그래서 결혼 전에 이걸 사가지고 와 잘 매고 살았는데, 어느 날 아무리 찾아도 없어 아내에게 물어보니 내버렸다는 것이다. 체신머리없고 얌체같이 대체 그게 뭐냐는 것이다. 너무도 약 오르고 섭섭해서 아내를 나무랐지만 쓰레기로 버려진 넥타이는 찾을 길이 바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내가 '이상한' 짓을 그만둘 사람인가? 나는 와이셔츠를 벗을 때 러닝셔츠처럼 목 위로 끌어올려 옷을 벗는다. 왜 그러느냐 하면 넥타이를 풀어서 다시 매기 귀찮기 때문이다. 와이셔츠를 벗은 다음 넥타이를 '분리'해 목에 감겨 있던 상태 그대로 보관한다. 그러면 다음에 와이셔츠를 입을 때 목에 걸기만 하면 돼 아주 편하다는 게 나의 확고하고 빈틈없는 지론/소신/생각이다.

그런데 아내는 이것도 뭐라고 한다. 옷걸이에 걸린 넥타이를 볼 때마다 목매단 사람 같아 끔찍하다다 뭐라나? 요즘은 넥타이로도 자살하는 사람이 많고, 내가 봐도 좀 모양상 거시기한 건 사실이다. 목에 감은 상태 그대로 걸어두면 넥타이가 빨리 상하는 단점도 있을 것이다.

하여간 버티는 데까지 버텨볼 생각이다. 아내가 나한테 무릎을 꿇을 때까지. 아내가 무릎을 꿇게 하는 방법-. 막 소리를 지르며 싸우다가 침대 밑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아내가 나오라고 한다. "내가 나갈 줄 알고? 안 나가!" 그러면 아내가 사람이 보이지 않으니까 무릎을 꿇고 침대 밑을 들여다보며 나오라고 한다. 분명히 무릎 꿇은 거 맞지? 그러면 그때 슬그머니 나가면 된다.

임철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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