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업계의 밀어내기 판매 관행이 사회적인 문제가 될 만큼 우리 전통주인 막걸리 수요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막걸리가 여성 직장인들의 회식자리에서는 물론 외국 관광객들로부터도 큰 인기를 끌었으나 지금은 어느덧 시들해진 분위기다. 결국 '막걸리 열풍'은 반짝 인기에 그치는 걸까?
업계 일각에서는 막걸리의 인기가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부터 내다본 사람들이 있었다. 막걸리 열풍이 불 때 지역에서 이름을 날리던 한 막걸리 업체는 여력이 충분한데도 생산량을 늘리지 않고 있었다. 10년 이상이나 이 분야를 지켜보던 필자는 너무 의아하게 여겨져 그 업체 대표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이 추세가 오래 안 갈 겁니다"라는 한마디였다.
사실 막걸리의 인기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측면이 있다. 일본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 건강에 좋은 '맛코리'로 불리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한류 및 한식 세계화 붐과 함께 인기가 한꺼번에 상승했다. 이에 편승해 업계에서는 유명 연예인을 내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고, 대형 마트에서도 생막걸리 코너가 점차 넓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1981년까지만 해도 막걸리가 국내 시장에서 맥주, 소주를 제치고 전체 주류 출고량의 46%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국민 술'이기는 했어도, 이러한 열풍의 바탕을 살펴보면 일본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일본 역시 와인이나 맥주 때문에 전통주인 사케의 소비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케의 등급화 등 다양한 시도 끝에 세계화에 성공했던 것이다. 그러나 막걸리의 경우 2008년 4.9%까지 떨어졌던 점유율이 다시 회복되는 과정에서 일본만큼 세심한 노력의 뒷받침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본과 중국도 쌀을 주식으로 하는 식생활 문화를 갖고 있으므로 우리의 막걸리와 비슷한 형태의 술이 있지만 막걸리만큼 대중화되지는 않았다. 더욱이 막걸리는 효모와 유산균이 살아 숨쉬는 채로 유통되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술이다. 알코올 도수가 낮으면서도 영양 성분이 풍부하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막걸리를 잔에 따랐을 때 보글거리는 거품과 마셨을 때의 찡한 탄산 맛은 발효 미생물이 살아있는 생막걸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맛이다.
하지만 미생물이 살아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막걸리의 품질관리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다행히 최근 몇 년간 막걸리 산업의 발전 기대감으로 대기업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막걸리 연구와 품질관리, 고급화 등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지역의 소규모 업체들이 함께 따라주지 않고는 전체적인 발전을 기약하기 힘든 것이 또한 막걸리 산업의 특성이자 한계다.
비슷한 방법으로 만들어지면서도 막걸리가 지역마다 서로 다른 맛을 내는 것은 기후와 물, 누룩 등 환경요인과 재료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발효 미생물의 다양성 때문이다. 따라서 전국을 다니면서 그 고장 고유의 막걸리 맛을 음미하는 것은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이런 맛의 다양성에 대한 기대는 대기업에서 생산되는 몇 종류의 제품만으로는 충족하기 어려울 것이다. 막걸리 산업이야말로 동반성장이 필요한 분야다.
지역의 막걸리는 막걸리가 푸대접을 받았던 오랜 기간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 맥을 유지해왔다. 이제는 지역 막걸리 산업을 보호하고 성장하도록 힘을 실어 줄 때가 되었다. 그것이야말로 지역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길이다. 각 지역 막걸리마다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담아 이야깃거리를 개발하고, 그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재료로 술을 빚음으로써 당당한 '로컬 푸드' 문화산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혹시 지역 막걸리의 열악한 여건 속에서 품질관리가 소홀한 부분이 발견된다면 지방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서 전국 막걸리 여행지도가 만들어지고, 여름휴가철마다 그 지도를 한 장씩 지니고 즐거운 여행을 계획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막걸리 르네상스'가 이뤄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순미 가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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