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의 시금석으로 여겨졌던 남북 당국 간 개성공단 회담이 사실상 결렬됨에 따라 한반도 정세는 다시 경색 국면 진입이 불가피하게 됐다. 최대 쟁점인 공단 가동 중단 사태 재발 방지책 마련을 두고 '상식과 국제규범'을 강조하는 정부와 '남북 공동 책임과 남측의 정치적 언동 금지'를 주장하는 북한의 간극은 쉽게 좁혀질 가능성이 낮다. 북한이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공단 완전 폐쇄가 현실화되는 것은 물론 북한이 대화 공세를 접고 도발로 회귀하며 남북관계가 급랭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회담 결렬 이후에도 공단 정상화를 위해선 북한의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태도 변화가 핵심 요건이라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정부 관계자는 26일 "주먹(통행 차단ㆍ근로자 철수)을 휘둘렀으면 다시 주먹을 휘두르지 않겠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이 같은 정부의 원칙론은 개성공단의 귀결점이 결국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꿰는 첫 단추라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22일 5차 실무회담을 앞두고 "이번 실무회담은 개성공단 정상화에 역점을 두고 있지만 새로운 남북관계 정립을 위한 원칙과 틀을 짜는 중요한 기초가 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라며 '지속 가능한 합의'를 강조했다. 지난 4월 국민 안전을 강조하며 근로자 귀환 결정을 내렸던 박 대통령이 재발 방지가 담보되지 않는 상태에서 개성공단 입경을 허용할 가능성은 낮다.
이에 대해 개성공단 사태 책임과 재발 방지를 두고 '남북' 공동 책임을 주장하는 북한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회담이 이어질수록 수정합의문에 '남측은 공단 운영에 저해되는 일체 정치적 언동과 군사적 위협 행위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 내용을 담으며 우리 정부에 책임을 전가시켰다. 자신들에 대해선 '이상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 한 정상 운영을 담보한다'며 언제든지 정치적 판단에 따라 가동 중단을 재발시킬 여지를 뒀다. 북한이 계속 이런 입장을 고집할 경우 정부가 연일 강조한 '중대 결심'은 공단 완전 폐쇄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 정부가 먼저 완전 폐쇄 카드를 던질 가능성은 낮다. 입주기업 입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도 북한의 점진적 변화를 위해서라도 국제적 기준을 갖춘 제2, 3의 개성공단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웅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이 "북측이 '결렬 위기'라고 표현했지 결렬ㆍ폐쇄 단어는 쓰지 않았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언급한 것도 대화의 문을 먼저 닫진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정부 관계자는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 (향후 회담이) 안 될 것이라고 하는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한으로서도 남측으로부터 전력을 끌어 쓰고 있는 공단의 독자적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실제 문을 닫을 경우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국제사회의 선(先)남북대화 요구에 부합하는 모양새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어느 시점에선 다시 대화를 제의해올 가능성이 있다. 결국 정전협정 체결일(27일)과 내달 한미 합동군사훈련 국면에서 북한이 보여줄 선택과 행보가 공단의 운명과 향후 한반도 정세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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