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재정연구원이 23일 발표한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에 대한 제언'은 복지 수요로 커질 수밖에 없는 재정 부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취득세나 기업의 법인세 감면 등으로 부족해진 재원을 일반 소비자가 부담하는 부가가치세 면세축소 등으로 보완하겠다는 구상은 '부족한 세금을 월급쟁이나 서민에게 전가한다'는 취지로도 해석될 수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연구원은 우선 소득세와 일반소비세의 비과세·감면을 줄여 과세기반을 확대하고, 법인세 부담을 완화하는 쪽으로 중장기 방향을 제시했다. 또 증세나 조세부담률 제고의 가능성도 열어뒀다.
연구원은 우선 한국의 낮은 조세부담률을 주목했다.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2010년 기준 19.3%로 영국(28.3%), 프랑스(26.3%), 독일(22.1%) 등 유럽 선진국은 물론 OECD 평균(24.6%)보다도 낮은 편이다. 조세부담률이 높지 않은 편인데다 앞으로 나갈 돈은 많을 것 같다는 게 문제다. 당장 박근혜 정부가 약속한 복지 정책 등 대선공약을 지키는 데만 앞으로 5년간 135조원의 재원이 추가로 필요한 상황이다. 연구원은 통일 시 막대한 재정 소요를 고려한 여력 확보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원은 이에 따라 다른 국가의 사례를 참고해 한국이 장기적으로 소득세와 사회보장기여금, 부가가치세 수입은 늘리고 법인세 부담은 완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2010년 기준 OECD 국가는 총 조세수입의 44.4%를 소득세(23.9%)와 일반소비세(20.5%)로 조달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소득세(14.3%), 일반소비세(17.6%)를 합치면 31.9%다.
연구원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OECD 국가들이 재정건전성 확보에 초점을 맞춰 소득세와 부가가치세를 중심으로 세수입을 확대하는 정책을 썼다며 한국도 이를 참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법인세는 효율성과 형평성을 고려했을 때 점차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좀더 구체적 방법으로는 세율 인상이나 세목 조정 등 직접적인 증세보다는 비과세·감면 축소와 지하경제 양성화, 금융소득 과세 강화 등을 거론하기도 했다.
연구원은 '증세'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증세 없이 복지수요 확대와 커지는 재정압박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론도 거론하며 추후 복지재원 수요, 잠재성장률 수준, 비과세·감면 축소 및 지하경제 양성화의 성과 등을 고려해 '국민적 합의'를 통한 증세 가능성을 열어뒀다. 안종석 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유럽 국가의 국민은 세금을 많이 내면서 복지혜택을 받는 반면 미국이나 일본은 국민부담률이 낮은데 이것은 각 사회의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에 대해 지적도 잇따랐다. 토론에 참석했던 이영 한양대 교수는 "정권 초라서 정치권의 영향이나 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부분이 경제적인 확인없이 진행되는 측면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이의영 군산대교수는 "박근혜정부가 공식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국민행복, 복지, 국민통합, 경제민주화 등의 국정철학이 발표 자료에 반영됐는지 발견하기 어려웠다"는 견해를 밝혔다.
일각에서는 기업가의 법인세 부담은 완화하는 반면 서민은 증세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세저항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또 아직 중장기 용역보고서 수준이지만 구체적 내용에서는 사실상 정부의 입김이 상당부분 반영됐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정승양기자 s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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