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드랑이는 양편 팔 밑의 오목한 곳을 말한다. 되도록이면 남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하는 곳이다. 요즘처럼 날씨가 너무 무더워 짧은 반소매나 민소매 옷을 입는 한여름에는 특히 겨드랑이에 신경이 더 쓰이지 않을 수 없다.
30년도 더 전에 어떤 여성잡지가 여성의 꼴불견에 관한 설문조사를 할 때 배우 김진규 씨가 “버스에서 보게 되는 여자 겨드랑이의 잡초”라고 대답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경우를 말한 건데, 나도 지하철에서 본의 아니게 여성의 겨드랑이를 보게 될 때가 있다. 남자의 눈길을 의식해 슬그머니 손잡이를 놓고 팔을 내리는 여자들도 보았다.
겨드랑이는 보기에도 좀 그렇지만 냄새도 문제다. 이른바 액취(腋臭), 겨드랑이 냄새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은 남들 옆에 잘 가지 않으려 한다. 수술을 하면 고칠 수 있다지만 누가 말해주기 전에는 자신의 액취가 심한지 어떤지 잘 알기 어렵다.
그러나 이 신체 부위에 성적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 같다. ‘여자의 겨드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 식의 인터넷 카페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회원으로 가입해야만 글을 읽을 수 있어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그들은 카페를 통해 미용과 건강, 제모, 사진 찍기, 성적 매력 따위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 같다.
이런 카페가 활동하는 것을 보면 겨드랑이 털을 기르자는 여성운동이 우리나라에서도 곧 활발해질 것 같다. 지난해 8월 미국에서 설립된 단체 ‘암피츠 포 어거스트(Armpits 4 Augusto8월을 위한 겨드랑이)’는 “여성들이여, 8월 한 달간 겨드랑이 털을 기르자!”고 외치고 있다. 회원들은 겨드랑이 털이 드러나는 민소매 차림으로 ‘털 난 비너스’, ‘털을 밖으로’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캠페인을 벌이거나 털을 제거해주는 점포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이들의 활동은 털을 남성성의 상징으로 보는 고정관념을 깨 여성의 인권을 신장하는 의미를 갖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낭성(多囊性) 난소증후군(이하 PCOS) 환자들을 위한 기부운동 차원에서 시작한 일이다. 난소 안에 미성숙 난자가 많아 무배란, 남성호르몬 과다증을 동반하는 PCOS는 생리불순 불임 비만 등으로 나타난다. 털이 많이 나는 다모증도 PCOS의 한 증상이다. 이 단체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http://armpits4august.org/에서 얻을 수 있다.
좋다. 다 좋아. 솔직히 말해서 여성의 털 난 겨드랑이를 안 볼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다니겠다는데 어쩔 수 있나. 여자들이 당당하게 보여준다면 지금처럼 곁눈질을 하지 않고 당당하게 봐줄 수밖에.
내가 오늘 말하고자 하는 건 그게 아니라 땀에 찬 겨드랑이다. 속옷이 땀으로 젖어 겉옷의 겨드랑이 부분에 지도를 그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절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 팀이 스페인과 경기를 할 때 스페인 감독의 와이셔츠 겨드랑이가 그랬다. 우습게보았던 한국 팀에 고전하자 초조해진 그는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두 팔을 들어 올리며 각종 제스처를 취했는데, 그때마다 푸른 와이셔츠 겨드랑이의 땀자국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한 달쯤 전에는 어느 민영 TV방송의 인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회자 중 한 명이 그런 꼴을 보였다. 프로그램 중간에 복장이 달라진 걸로 미루어 누군가 땀 문제를 지적했던 모양인데, 처음부터 그런 데 신경을 썼더라면 좀 좋았을까.
그런데 며칠 전 정부의 어느 고위 인사가 주최한 만찬에 갔다가 또 땀에 찬 겨드랑이를 목격하게 됐다. 냉방이 잘 되는 곳인데도 “이제 윗도리 벗읍시다.” 하면서 양복을 벗은 그의 겨드랑이는 축축이 젖어 있었다. 그는 손님들에게 신명나고 즐겁게 여러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주었는데, 팔을 들어 올릴 적마다 요 위의 오줌 자국 같은 그놈의 땀자국이 눈에 들어와 참 곤욕스러웠다. ‘넥타이 안 매고 오길 잘했지, 나도 저랬을 거 아냐?’ 하는 생각이 자꾸 났다.
그래서 대중 앞에 서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 주문한다. 1)옷 입고 땀 흘리지 말 것(이게 말이 되냐?). 2)겨드랑이에 땀이 차도 겉으로 표나지 않는 옷을 입을 것(한여름에 검은 옷이나 입으라구?). 3)겨드랑이에 땀이 찬 것 같거든 얼른 옷을 갈아입을 것(갈아입을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은데?). 4)겨드랑이에 땀이 찬 것 같거든 팔을 올리지 말고 깔짝깔짝 이야기할 것(좀 옹색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5)겨드랑이에 땀이 차서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하고 계속 더 신나게 팔을 들어 올리며 이야기할 것(흥, 망신을 당하려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어?).
임철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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