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앞을 볼 수 없다면? 누구나 절망에 빠질 것이다. 혈관에 염증이 생기는 베체트병에 걸려 서서히 시력을 잃다가 결국 실명한 미순씨(53)도 예외는 아니었다. 28년 전 험한 산을 골라 타는 용감한 아가씨였던 그녀에게 반한 효근씨(53)와 2년 반의 열애 끝에 결혼했지만, 출산 1년 뒤베체트 병에 걸려 웃음을 잃었다. 그리고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처음에는 아나운서의 양복이 보이지 않더니 자막이 안 보이고, 엘리베이터 숫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나이 서른아홉에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10년. 집과 카센터를 오가며 두 집 살림을 해내는 주부로, 남편의 극진한 외조를 받는 아내로, 미순씨는 다시 환한 미소를 되찾았다. 눈은 안 보이지만 그녀는 분명 달라졌다. 무엇이 그녀를 바꿔놓은 걸까?
지난 10년간 미순씨는 마라톤에 빠졌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서 달리고 또 달리며 시련을 이겨낸 것. 힘들 때면 옆을 바라봤다. 언제나처럼 그녀의 손을 잡아주는 효근씨가 있었다. 그렇게 마라톤 풀코스 완주 100회 달성, 100km 이상 울트라 마라톤 44회 달성, 부부는 두 손을 잡고 달릴 때마다 새로운 기록을 세워나갔다.
이제 다시 새로운 기록에 도전한다. 땅끝마을 해남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622km를 150시간 만에 완주해야 하는 '울트라마라톤'이다. 무려 3년을 기다려온 도전이지만, 시작 첫날부터 폭우가 쏟아졌다. 빗물에 발은 부르트고, 몸은 무거워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포기자들이 나온다. 그럼에도 아내의 손을 놓지 않고 달리는 효근씨는 아내의 눈이자, 동반자이고 안내자다. 그런데 마라톤의 절반을 지날 무렵, 효근씨가 부상을 입고 마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 미순 씨는 이대로 도전을 포기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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