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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성의 날씨와 세상/7월 19일] 보은 색시도 좋고 갑산 색시도 좋은 장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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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성의 날씨와 세상/7월 19일] 보은 색시도 좋고 갑산 색시도 좋은 장마

입력
2013.07.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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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길면 보은(報恩) 색시들이 들창을 열고 눈물을 흘린다는 옛말이 있다. 대추골인 이 곳은 대추가 시집갈 혼수를 마련하는 유일한 수단이 되는데, 긴 장마는 대추를 여물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장마가 짧으면 관북지방의 갑산(甲山) 색시들은 삼(麻)대를 흔들며 눈물을 흘린다. 비가 덜 내리면 삼이 덜 자라고 흉마가 되면 삼베 몇 필에 오랑캐에게 몸이 팔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 여름 장마는 보은 색시도 좋고 갑산 색시도 좋은 장마다. 충청 이남지방으로는 거의 장마가 없이 연일 폭염이 맹위를 떨쳤다. 반면 장마전선이 북한과 중북부지방을 오르내리면서 한반도 북쪽 지역으로 많은 비를 내렸다. 보은 색시는 비가 안 오니 좋고, 갑산 색시는 비가 많이 오니 시집가는데 문제가 없는 행복한 장마다.

그런데 말이다. 보은과 갑산 색시는 좋은데 중북부 사람들은 너무 싫다.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댓새 왔으면 좋지.' 김소월 시인은 그의 시에서 장맛비도 닷새 이상은 안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올 장마는 거의 보름간 쉬지도 않고 비가 내린다. 게다가 느닷없이 순식간에 강한 물폭탄을 쏟아 붓는다. 산이 무너지고 고속도로가 통제된다. 축대가 무너지고 사람들이 죽는다. 강이 범람하고 농지가 침수된다.

'칠 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 달 장마에는 못 산다'는 속담이 있다. 체감 기후로나 생활상의 편의로나 가뭄이 장마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장마가 들면 당장 수해가 눈앞에 닥치니 너무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올 여름 장마는 왜 이렇게 유별날까. 올 여름에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장마가 없어졌다. '거꾸로 장마, 원인은 북극의 눈물.' 한 일간지의 기사 제목이다.

올 여름은 남쪽에서 장마전선이 만들어져 중부지방으로 올라온 것이 아니고 중부지방에서 만들어진 '거꾸로 장마'였다. 32년 만에 나타난 이례적인 현상이다. 독특하게도 장마전선이 서울, 경기, 강원 등 중북부지방으로만 영향을 주었다. 통상 장마전선이 중부지방에 걸치면 남부지방에도 비가 온다. 그런데 남부지방은 햇빛만 쨍쨍 나는 가운데 열흘 이상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중부지방에 내리는 비의 형태도 열대지방의 스콜을 닮았다. 순간적으로 엄청 쏟아 붓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뚝 뗀다. 그러다보니 강수분포나 피해지역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기상학적으로 보면 북극에서 만들어진 거대한 고기압이 문제다. 고기압이 유럽과 중앙아시아에 강한 저기압을 만들고 한반도와 동북아 상공에 상층고기압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기후변화로 힘을 쓰는 북태평양고기압이 예측 불가능하게 확장하면서 이상한 기상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장마는 우리나라 연평균강수량(1,300mm)의 40% 이상의 비를 약 한달 동안에 집중적으로 가져온다.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내리기에 피해는 실로 엄청나다.

그런데 장맛비에도 좋은 점이 있다. 경제적 가치가 생각보다 크다. 국립기상연구소에 따르면 장맛비의 경제적 가치는 2,470억 원 정도가 된다. 장맛비는 댐에 저장돼 생활용수나 농업용수로 활용되거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대기 중의 미세먼지 농도를 낮추는 순기능도 있다. 도시의 '열섬 효과'를 막아 무더위도 막아준다. 장맛비의 긍정적 효과가 오히려 사회적 비용을 상쇄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세상살이라는 게 반드시 손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피해는 최소화하고 이익은 극대화하는 지혜만 있다면 두려워할 것이 없다. 앞으로 장마는 해가 갈수록 더 강해질 것이고 더 많은 피해를 가져올 것이다. 철저한 대비만 한다면 장마는 해가 아니라 이익이 된다.

*매주 1회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의 칼럼 '날씨와 세상' 를 연재합니다. 반기성씨는 연세대에서 기상학을 전공했으며 한국기상학회 부회장을 역임했습니다. 등 14권의 기상전문 서적을 집필했습니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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