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은행을 이용할 때 내는 수수료를 인상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의 수익 부진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금융기관 수수료에 대해 한 때 '갑의 횡포'라고 비판해 왔던 금융당국이 이번에는 수수료 인상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주먹구구식이라고 비난을 받아온 은행 수수료의 개선을 위해 은행들이 연내 수수료 모범규준을 만들도록 지도하기로 했다. 이는 최수현 금감원장이 수수료 현실화를 위한 후속 대책을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최 원장은 앞서 지난 15일 기자들과 만나 "원가 분석을 통해 (금융회사의 입장에서) 적정한 수수료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현재 은행권은 체계적인 수수료 규정이 없어 주요 시중은행이 책정한 수수료를 다른 은행이 따라 하는 게 관행처럼 돼 있다. 예컨대 창구를 이용할 때 송금수수료의 경우 10만원 송금 기준으로 한국씨티은행은 수수료를 면제해주는 반면 산업은행과 경남은행은 1,500원,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600원 등으로 각각 서로 다르게 부과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현재 은행 마감 후 자동화기기(ATM)를 이용해 송금할 때 수수료도 국민은행 500원, 전북은행 등 1,300원 등으로 각각 상이하다. 금감원도 수수료에 대한 원가분석 자료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감원은 이번 은행 수수료 모범 규준에 수수료 원가 산정 방식에서부터 산정 절차 등을세밀하게 담아 은행들이 수수료가 합리적으로 책정되도록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은행들이 순익 감소로 아우성을 치는 상황에서 금감원이 시도하는 원가분석은 은행들의 수수료 인상의 근거를 만들어주는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많다. 결국 은행 창구를 이용하거나 은행 마감 후 송금, 인출 시 수수료가 연내 일부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게 금융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금융권과 소비자단체들은 금융당국의 수수료에 대한 기준이 너무 자의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금융당국이 카드사와 은행권의 수수료 낮추기에 나섰던 2011∼2012년과 비교해볼 때 불과 1년 만에 금융당국의 입장이 정 반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서는 은행의 가산금리와 수수료 수준을 낮춰야 한다는 금융당국 관계자들의 발언도 잇따랐다.
때문에 금융당국이 그 동안 금융소비자 보호를 내세우며 은행 수수료 인하를 압박해 왔던 것에서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게 금융권과 소비자단체들의 지적이다.
정승양기자 s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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