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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귀열 영어] Quote Mining (말꼬리 잡기는 정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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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귀열 영어] Quote Mining (말꼬리 잡기는 정치 언어)

입력
2013.07.17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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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1984’의 저자 George Orwell은 ‘정치 언어는 거짓을 진실 되게 하고 살인도 존경심을 갖게 만들며 모두 순수한 것처럼 위장한다’(Political language... is designed to make lies sound truthful and murder respectable, and to give an appearance of solidity to pure wind.)고 했다. Orwell은 1946년 그의 마지막 에세이 ‘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를 ‘Horizon 저널’에 기고하며 애매 모호한 말보다는 명쾌하게(clarity instead of vagueness) 말할 것과 정치 담합이나 당파보다는 개인의 자유 의사를(individuality over political conformity) 강조했다.

이런 말을 들으니 우리 정치 현실이 떠오른다. 지난 정권 탄생에는 유권자가 ‘747’같은 허황된 공약에 표를 몰아준 듯한데, 이번 정권도 ‘신뢰’를 그토록 외치더니,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여야간 시비와 말싸움으로 늘 시끄럽다.

각 분야별 언어 중에서 유독 정치 언어가 가장 비생산적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유권자의 관심을 사고 눈치를 보기 위해서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고 핵심을 숨기는 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eschew obfuscation(=avoid being unclear)라는 지적이 나오는데 이는 쉽게 말해서 ‘모호한 것을 피하라’는 것이지만 ‘간단 명료하게 말하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국제 항공 분야에서는 똑같은 어휘가 두 가지 이상의 의미로 쓰일 때는 가장 기초적이고 분명한 의미만 쓰도록 하는데, 그 이유는 항공 사고의 11~20%가 무전 교신상의 언어 소통 문제이기 때문이다.

동형이의어(homegraphs)가 1,400 어휘나 되고 동형이의어(homephones)가 7,800단어나 되며 close는 ‘닫다’뿐만 아니라 ‘가까운’의 뜻도 갖고 있다. 이런 이유로 NASA에서는 단순 명료한 언어를 사용하도록 했고(1959) Mark Twain은 금기시 해야 할 언어 항목 14 가지를 소개하며 모호한 말(eschewe surplusage)을 삼가자고 했다. 철학자 Paul Grice도 명쾌한 언어야말로 소통의 최소한의 매너(Maxim of Manner)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날마다 싸움박질 하는 것은 대부분 ‘거두절미 말꼬리 잡기’(quote mining)이다. 글자 그대로 남의 말을 자기 편의대로 인용해 지뢰를 떨어뜨리듯 공격한다는 뜻이다. 물론 논리나 상식과 거리가 먼 것이며 공격적 왜곡으로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다. 정치 언어는 옛날부터 가장 오염되고 모호한데, 그렇다고 이 분야에서 유권자를 위해 명쾌한 언어가 사용될 가능성은 앞으로도 전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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