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스탠퍼드대 교수였던 필립 짐바르도는 작은 실험 하나를 진행했다. 한적한 골목에 동일한 상태의 자동차 두 대의 보닛을 1주일 간 열어 놓은 채 방치해 뒀다. 그 중 한 대는 일부러 창문을 조금 깨놓았다. 1주일 후 창문이 멀쩡한 한 대의 차량은 원래 상태를 유지했으나, 유리창이 조금 상한 차는 유리창이 몽땅 깨진 채로 발견됐다. 심지어 유리가 깨진 차는 타이어와 배터리가 사라졌고, 오물까지 덮어쓰고 있었다. 단지 유리창 하나를 조금 깨 놓았을 뿐인데 이처럼 큰 차이가 발생했던 것이다.
미국의 범죄학자였던 윌슨 교수는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심리학자 조지 켈링과 함께 월간잡지 을 통해 이른바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을 발표했다. 그의 실험에 따르면 건물의 깨진 유리를 주인이 방치하자 멀쩡한 창문에 돌이 날아들고, 결국엔 나머지 창문 모두가 깨지고, 심지어 방화까지 일어나는 경우가 발생했다고 한다. 결국 작은 무질서를 방치할 경우 그 지점을 중심으로 더 큰 혼란과 범죄가 확산돼 도시 전체가 무법천지 혹은 슬럼화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윌슨 교수가 이론을 발표하자 각 도시가 범죄율을 떨어뜨리기 위해 이를 앞다퉈 도입했다. 강력범죄 빈발로 골머리를 앓던 뉴욕시가 대표적이였다. 1994년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뉴욕지하철에 적용해 큰 효과를 봤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뉴욕지하철은 '절대 타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악명높은 범죄 지하철로 불렸다. 연간 60만건 이상의 범죄가 발생한 탓이다.
뉴욕 당국은 우선 지하철 차량 6,000여대에 그려져 있던 낙서를 지웠다. 낙서가 또 다른 낙서와 범죄를 유발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었다. 작업이 끝난 뒤 지하철 범죄 증가율이 주춤해졌다. 3~4년이 지나자 범죄율은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줄리아니 시장은 시 교통국이 올린 성과를 바탕으로 시정 전반에도 이를 적용했다. 길거리 낙서를 지우고 보행자의 신호 위반이나 빈 깡통 등을 아무 데나 버리는 경범죄를 엄격히 단속했다. 그 결과 범죄 발생 건수가 75%나 급감했다.
지금 우리 노사관계에서도 90년대 초반 뉴욕과 같이 불법행위가 상당히 많다. 지난주 현대자동차 사내하청노조 조합원 수백명이 울산공장 라인을 점거하고 이를 제지하는 회사관계자를 폭행하여 구급차까지 출동했다. 특히 작년 10월에 시작된 사내하청노조의 울산 송전탑 불법 고공농성은 법원의 퇴거명령을 이행하려는 집행관까지 폭행, 저지하면서 지금까지도 진행 중이다. 심지어 불법 고공농성을 응원하기 위해 노동계와 일부 시민단체가 7월 20일 전국 각지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송전탑에 간다고 하니 불법 고공농성이 언제 마무리 될 지 요원하다.
자동차 부품회사인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의 상황도 매우 심각하다. 지난주에 회사 근로자도 아닌 금속노조 경주지부 조합원 150명이 쇠파이프와 쇠사슬을 든 채 공장 내부로 침입해 이를 제지하는 사측 관리자를 폭행했고 이로 인해 사측 관리자 3명이 입원했다고 한다.
이제껏 우리사회는 노동계의 불법행위를 '노사관계의 특수성'으로 포장하여 방치한 면이 없지 않다. 현재 산업현장에서 되풀이되는 노동계의 불법행위는 우리사회가 노사관계의 '깨진 유리창'을 방치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노사관계 영역에서 불법행위가 방치된다면 노사관계는 더욱 악화될 수 밖에 없다. 룰을 어기는 사람에게 '노사관계 특수성' 운운하며 법의 잣대를 관대하게 적용하면 룰을 계속 어겨서 이익을 취하려 할 게 뻔하다. 2013년 IMD(국제경영개발원)의 국가 경쟁력 순위에서 우리나라의 노사관계 생산성이 60개국 중 56위를 기록한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정부는 상생의 노사관계를 기반으로 한 고용률 70% 달성을 국정과제로 삼고 있다. 상생은 서로가 룰을 지킬 때 가능하다. 정부는 당장 우리 노사관계의 '깨진 유리창'부터 갈아끼워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진정한 상생이 가능하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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