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의 강경파와 일부 시민단체들이 선거로 뽑힌 권력인 현직 대통령을 겨냥해 도를 넘는 비방을 하는 등 사실상의 대선 불복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권이 상대 진영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기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단순히 대선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심리적 차원을 넘어 소수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지는 정치 현실에 편승해 자기 진영의 선명성과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오히려 "분열의 시대일수록 정치인들이 선거 결과에 승복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통합 이미지를 각인시키면서 정치적 자산을 늘릴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불복과 탈당이 전통처럼 된 한국 정치사에서도 승복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동력을 확보한 사례들을 찾을 수 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배했던 박근혜 대통령도 그런 예에 속한다. 당시 이명박 후보와 치열한 각축전을 벌일 끝에 패배한 박근혜 후보는 "저 박근혜, 경선 패배를 인정합니다.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합니다"라고 말했다. 박 후보는 이어 "경선 과정의 모든 일들을 이제는 잊어버립시다. 하루아침에 잊을 수 없다면 며칠, 몇 날이 걸려서라도 잊읍시다"고 말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박 후보는 이날 연설을 통해 '원칙의 정치인'이라는 자산을 확실히 다졌다.
1971년 대선을 1년 앞두고 실시된 신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김대중 당시 후보에게 역전패 당한 김영삼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김영삼 후보는 "페어플레이를 통해 김대중씨가 새로운 역사 창조의 기수로 선택된 이상 국민에게 약속한대로 김씨를 적극 지원하겠다. 김대중씨를 앞세우고 정권 교체를 위해 어디든지 함께 다닐 것을 약속한다"고 연설한 뒤 전국을 돌며 지원 유세를 했다. 이런 모습은 김영삼 후보의 리더십을 긍정적으로 끌어올리는 자산이 됐다.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선'대세론'의 정점에 서 있다가 버락 오바마 후보에게 뼈아픈 패배를 당했던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의 사례가 있다. "나는 민주당원으로서, 자랑스러운 오바마 후보 지지자로 이 자리에 섰다"며 결과에 승복한 힐러리는 이후 국무장관직을 무난히 수행하며 풍부한 국정 경험을 쌓았다. 차기 대선이 3년여 남은 현재 민주당 후보 중 힐러리 지지율은 60%를 웃둘고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대선 불복 움직임을 통해 단기적으론 지지층 결집을 이끌 수 있겠지만 불복 문화가 조장하는 사회 분열은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며 "정치권은 본연의 임무인 갈등 조정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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