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이 문자를 보낼 때 실수만 하는 건 아니다. 가족들을 혼내고 다스리고 한방 먹이고 휘어잡는 품이 아주 볼 만한 경우가 많다. 가족들한테도 그런데 친구나 후배들에게 보내는 문자에는 얼마나 재미있고 적나라하고 솔직한 내용이 많을까? 어떻게 살짝 들여다보는 방법이 없을지 되게 궁금하다.
인터넷에는 ‘엄마의 당당한 답장’이라는 제목 아래 재미있는 문답이 시리즈로 소개돼 있다. 이 글도 실은 그런 걸 베껴서 요리조리 짜깁기한 건데, 당당한 걸 넘어 당돌한 답장도 많다. 그런 걸 읽다보면 우리 여성들, 특히 엄마(주부)들이 언제 이렇게 자신감 있고 여유 있게 세상을 살게 됐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배달겨레는 역시 여성이 더 똑똑한 것 같아서 절로 기가 죽는다.
우선 아들을 길들이는 엄마들의 문자부터 살펴보자. 참가번호 1번은 미국 엄마다. “아들아, 너 혼나고 싶니?” “왜요?” “왜 학교에서 문자하고 있니?” 그러자 아들이 어이가 없다는 듯 “장난하세요? 엄마가 먼저 보냈잖아요?” 우리와 달리 미국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휴대폰을 마음대로 쓸 수 없다. 그런데 엄마는 아들을 감시하고 싶었나 보다.
“식기 세척기 내려놓는 거 잊지 마라.” “숙제는 했니?” “문안인사 드리러 할머니 댁에 들러야 한다.” 어떤 미국 엄마가 아들에게 이렇게 계속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이어 “아빠랑 이야기해 봤는데, 너 다음 달에 차 한 대 사줄게.”라고 했다. 깜짝 놀란 아들이 “진짜죠???? 고마워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엄마는 “물론 뻥이지. 문자 제대로 가고 있나 확인한 거뿐이야.” 아들이 답장을 보내지 않으니까 낚시질을 한 건데, 제대로 걸려든 아들은 “정말 너무해요.”하고 원망한다.
지금부터는 한국의 무서운 엄마들 차례. 생일을 맞은 아들이 “어머니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 덕에 미니홈피 방문자 수가 2,000명을 넘었어요.”라고 했다. 엄마의 대답은 “그러니까 앞으로는 엄마한테 깝치지 마.” 방정맞게 깝죽거린다는 뜻인 ‘깝치다’는 잘 쓰이지 않는 말이다. 엄마의 어휘력이 놀랍다. 이상화의 시 를 외우는 엄마인가 보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밤 2시가 다 되도록 아들이 또 아무 연락 없이 들어오지 않는다. 화가 나서 대뜸 “언제 올려구?”하고 문자를 날린 엄마. 4분이나 지나서 “곧 갈게요. ㅋㅋㅋ”하고 답장이 왔다. 2분 후 “왜 웃어? 내가 우습냐? 집 들어올 생각하지 마.” 그로부터 8분 후 아들의 기죽은 대답. “곧 가겠습니당;;;” 그러니까 아무 때나 ㅋㅋㅋ하고 웃거나 엄마를 졸로 보고 깝치면 큰일 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들이 엄마한테 눈썹을 치키고 화가 난 표정의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그걸 본 엄마의 일갈. “눈 깔어.” 그러자 아들이 몇 분 후 환하게 웃는 표정의 이모티콘을 띄웠다. “그래. 그래야지.” 이걸로 끝인지 그 다음에 어떤 문자가 오갔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새끼야라는 욕만 안 붙었지 엄마는 거의 조폭 수준이다.
술꾼 엄마도 무섭긴 마찬가지다. “지금 엄마가 곱창 사갈 건데 곱쏘하자.” 곱창 안주로 쏘주 마시자는 이야기다. 이 엄마한테는 아들이 술친구인가 보다. “저 지금 술 마시고 와서 술은 못 마셔요.” “난 내 아들을 약하게 키운 적 없다.” 그러자 아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두 번 당한 게 아니라는 듯 “젠장, 알써요.”한다. 바람직한 모자관계다.
술은 안 마시지만 음식 가지고 횡포를 부리는 엄마도 꽤 있나 보다. “너 뭐 먹고 싶니?” 그래서 아들이 삼겹살을 대자 “나 카레 먹고 싶어서 카레 했다.”고 하는 엄마. 그럴 거면서 먹고 싶은 건 왜 물어? 그보다 더한 엄마도 있다. “떡볶이 먹고 싶지?” “먹고 싶다 해라.” “답장 빨리 해라.” “빨리 하라구!” 그래도 아들인지 딸인지가 아무 대답이 없자 엄마는 “죽을래?”하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자 “먹고 싶어.”라는 대답이 왔다. 불과 1분 사이에 오간 말이다. 먹는 것에는 한 치 양보도 없는 무서운 엄마다.
이번엔 아들인지 딸인지가 먹는 걸 요구하는 문자. “치킨 튀겨줘.” “공부나 해라.” “아구찜 해줘.” “볶음우동” “봉골레 스파게티 해줘.” 그 녀석 먹고 싶은 것도 정말 많다. 엄마는 듣고만 있다가 연속 세 방을 날린다. “서울대 가줘.” “고려대 가줘.” “연세대 가줘.” 공부는 안 하고 먹는 타령만 할 거냐는 건데, 아들인지 딸인지 본전도 못 찾았다. “엄마 뭐해?”하는 문자에 “응...집에서 앨범 보다가 니 얼굴 보고 토하고 있었어.” 이렇게 답한 엄마도 아들인지 딸인지가 공부를 못해서 그런 걸까? 왜 이런 농담을 한 걸까?
그래도 아들인지 딸인지는 엄마들의 대접을 받는 편이다. 남편은 4인 가족 집안의 넘버 4, 3인 가족 집안의 넘버 3이다. 어느 가족 4명의 그룹 채팅. 카톡에 띄운 그대로 옮겨보자. “엄마, 나 오늘 집에 가면 귀 파주면 안 돼?” “파줘야지.” “시원하게 파주꾸야?” 여기까지 들은 남편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나도.” “나도 파주꾸야?” 그러자 아내 왈, “너도 니네 엄마한테 파달라고 해.” 이 집안이 그날 온전했을까?
몹시 추운 겨울날 엄마는 아들 걱정을 한다. “아들, 엄청 춥네. 붕알 안 얼게 조심혀.” 그러자 아들이 “아빠한테도 한번 보내줘. 엄마, 아빠도 얼지 말라고.” 그놈 참 효자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엄마가 한 말이 많은 한국 남편들을 울게 했다나 어쨌다나. “아들은 앞으로 씨를 받아야 하니까 조심해야 하고 아빤 쓸모가 없으니깐 얼거나 말거나.”
임철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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