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 탄생 160주년이다. 그의 작품과 삶에 대한 열기와 관심은 더욱 고조되는 분위기다. 생전에 전혀 인정받지 못했으나 강력한 색채와 격렬한 필치의 그림으로 사후에 서양미술사에서 위대한 화가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는 고흐는 굴곡지고 극적인 삶 속에서 불꽃같은 열정을 불태운 삶 자체가 지워지지 않는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고흐는 1853년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나 37세에 권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람이다. 초등학교 3년, 중학교 1년이 학력의 전부로 그림을 체계적으로 배운 것도 아니며, 요즘의 미술학원 같은 곳에 몇 달간 다닌 것이 전부다. 16세부터 22세까지 화랑에서 근무했고 24세에 아버지의 길을 따라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퇴교 당하여 실패한 후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1881년 12월에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1890년 7월 29일 정신병으로 인해 자살하기까지 불과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열정을 불태워 879점의 그림을 남겼다.
그는 그림과 함께 책을 사랑하여 다양한 독서를 한 지성적인 인물이었다. 작품 활동에 몰두할 수 있도록 후원해 준 동생 테오에게 보낸 668통의 편지는 예술의 내면과 작품의 제작 배경을 치밀하고 유려하게 서술하는 문장력을 가지고 있었다. 네덜란드인으로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구사했고 희랍어, 라틴어까지 두루 섭렵했다.
예민한 개성으로 넘친 그는 주위 사람들이 기피하는 인물이 되어 언제나 고독했다. 고갱과의 2개월간의 합숙에서 이타적이고 영혼이 맑은 고흐는 성격이 다른 고갱과는 예술을 보는 눈도 일치하지 않아 대판 싸움을 하고 홧김에 자신의 귀를 잘라버린 일화도 있다.
소박하면서도 정열적인 그는 정신병 등 온갖 불행에 굴하지 않고 싸우면서 엄청난 고뇌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맑고 깨끗한 영혼으로 세상 사람들을 한없이 사랑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심취하여 노동자와 농민 등 하층민의 모습과 자연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그가 죽기 한 달 전에 겨우 한 점의 그림을 화상인 동생 테오가 싼 값에 팔았는데, 그 그림이 1987년에 무려 4,000만 달러가 넘는 가격으로 팔렸으니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된 것이다.
동생 테오의 아내 요한나는 그의 그림을 후세에 알린 공로자다. 대영박물관에 근무했던 요한나는 고흐와 그의 그림을 진심으로 이해를 하고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정리하여 책으로 출간했고, 전시회를 통해 고흐의 진가를 세상에 알려 미술사에 빛나는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사후에 그에 대한 저서가 수없이 쏟아졌고 여러 편의 영화가 상영되었으며 유명한 팝 가수인 돈 맥클린이 '빈센트'라는 노래를 불러 그를 칭송했다.
고흐의 삶에서 여러 인생 키워드를 발견하게 된다. 세상살이에는 실패했지만 영원히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격렬하고 정신없는 놀이인 인생에서 실패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데 있다.
그는 누구보다도 시련이 많았던 사람이다. 인생은 평화와 행복만이 아니라 온갖 시련이 점철된다. 바다의 파도처럼 인생의 시련은 무시로 다가온다. 시련은 두려워하고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담대하게 마주해야 할 귀중한 선물로 여기고 시련과 직면하여 극복해야 한다.
그는 열정을 불태운 사람이다. 열정은 인생이라는 기관차를 움직이는 힘이다. 인생의 동력이며, 능동적인 힘이고 행동력이다. 불타는 열정을 가진 사람은 어려움이 닥치든, 미래가 암담하든 꿈을 현실로 만들어낸다.
그는 그림이라는 예술의 창의성을 발휘했다. 창의성은 생각을 디자인하는 것이며 독창성으로 차별화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자신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 자신이 표현하지 않으면 다른 누구도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창조해야 한다.
빈센트 반 고흐, 그는 작품뿐만 아니라 삶 자체가 신화로 남아있는 사람이다.
윤문원 작가ㆍ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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