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참전군인들의 제기로 시작된 고엽제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사건이 14년간의 법적 공방 끝에 1만6,579여명의 원고 중 39명에게만 고엽제 피해가 인정되는 선에서 일단락됐다. 고엽제와 질병 간 인과 관계를 일부 인정했다는 의미는 있지만 인정 대상과 범위를 극히 제한해 피해자들의 실질적인 보상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은 12일 "고엽제 다이옥신 성분에 노출돼 후유증을 입었다"며 파월군인 김모(70)씨 등 1만6,579명이 고엽제 제조사인 미국 다우케미컬과 몬산토 등 2개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장병들이 겪은 후유증 중 염소성여드름 질병은 고엽제 노출이 원인이 됐다며 제조사 책임을 세계 처음으로 인정했지만 당뇨병과 폐암, 말초신경병, 버거병 등 다른 질병은 고엽제 노출에 따른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핵심 쟁점인 베트남 참전 군인들에게 발병한 질병과 고엽제 노출 사이의 인과 관계를 대부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이들 질병은 발생 원인 등이 복잡하고 음주와 흡연 등 후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질환"이라며 "고엽제 노출에 따른 것으로 보려면 다른 증거들이 필요하다"면서 이같이 판시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시효가 소멸되지 않은 염소성여드름 피해자 39명에 대해서는 고엽제 노출과 질병과의 인과 관계를 인정해 1인당 600만∼1,400만원, 총 4억6,600만원을 배상하도록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염소성여드름은 고엽제에 함유된 다이옥신 성분에 노출될 경우 발병된다"고 밝혔다.
고엽제 전우회 회원 등으로 구성된 원고들은 고엽제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부대 작전 지역에 뿌려져 후유증 등의 피해를 봤다며 1999년 9월 5조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원고 패소 판결했으나 2006년 2심에서는 11개 질병에 대해 고엽제와의 역학적 인과 관계를 인정하면서 소송을 제기한 2만여명 중 6,795명에게 1인당 600만∼4,600만원, 총 630억여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앞서 고엽제 피해자들은 1994년 7월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지법에 고엽제 제조물 책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외국인이 국제 소송을 제기하려면 당사자국 대법원 판결이 있어야 한다는 미국 연방법에 따라 이들은 소를 취하했다.
따라서 이날 승소가 확정된 염소성여드름 환자 39명은 이번 확정 판결을 근거로 미국에서 국제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염소성여드름 질병과 고엽제 간 인과 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막대한 소송 비용과 시간을 부담하면서 실제 손해배상 청구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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