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우리에게 너무 어려운 숙제를 냈다. 여기서 우리는 필자를 포함한 테크노크라트를 통칭한다. 이 테크노크라트의 범주 안에는 지금까지 한국경제를 진두지휘해 왔던 우수한 공무원들, 국내외 경제 일선 현장에서 땀 흘리며 한국경제를 선진국 문턱까지 올려놓은 근면한 경영인들과 회사원들, 한국산업 발전의 초석이 된 기술개발을 꾸준히 이루어 온 과학기술인 그리고 엔지니어들이 포함된다. 좀 더 넓게 보자면 한국경제 주역들의 갈 길을 코치해 왔던 교수들, 연구원들 그리고 언론인들, 나아가 이들이 역할을 제대로 해 나가는 데 윤활유 역할을 해 온 공공기관 임직원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를 지금까지 이끌어 온 단단한 경제 시스템도 이들 테크노크라트들이 고심하며 서로 상의해 가면서 만들어 온 산물이다. 이들은 지금까지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닥칠 때마다 번득이는 기지와 진지한 자세로 그 해답을 찾아내곤 했다. 1960년대 초기 자본도 기술도 천연자원도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던 나라의 국민들에게 경제개발이 가능하다는 철학을 심어주고, 당시 대통령이 내걸은 수출입국이라는 기치를 국민 모두의 가슴에 심어주는 역할을 했던 이들도 테크노크라트였다. 두 번의 석유위기 와중에서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해 나가는 어려운 일도, 기술력을 높이기 위해 내건 '기술한국'의 숙제를 푸는 일도, '세계화'라는 새로운 명제와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겪게 된 이른바 'IMF 사태'라는 어려운 난제를 풀어내는 일도 모두 이들 테크노크라트의 몫이었다.
그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내건 경제 슬로건들 즉, '지식기반 경제', '참여경제' 그리고 '녹색경제' 등의 명제들을 경제에 접목시켜 한국경제를 한 단계씩 발전시키는 일도 역시 이들 테크노크라트들이 문제를 풀어가며 담당해 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던진 '창조경제'라는 숙제를 과연 우리 테크노크라트들의 힘만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어쩌면 박 대통령이 규정한 창조경제의 정의 속에 그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테크노크라트들은 그 정의의 뒷 부분에 대단히 주목하면서 과학기술과 ICT를 기반으로 산업과 산업, 산업과 문화가 만나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내기 위해 진력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이 테크노크라트들이 문제를 풀어내는 방식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제시한 '창의성과 상상력의 요소들을 발견하여 이를 꽃피우려는 자세'는 잘 발견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여기서 창의성과 상상력의 요소를 필자는 좀 엉뚱한 사람들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기존 주류 경제 시스템을 벗어나서 새로운 사업을 일으키려는 기업가,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만을 가지고 창업해 보겠다고 나선 발명가, 기술자들, 신기한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지만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문화인, 예술인 그리고 인문학 선구자들, 이들 모두를 '창조적 인간'들로 불러야 옳지 않을까.
테크노크라트들이 마음을 열지 못한다면 창조경제는 정말 풀기 어려운 숙제가 될 것이다. 스스로가 주도해야 한다는 생각, 지금까지 이루어낸 경제 시스템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스티브 잡스, 저커버그 등 지금 세상에서 가장 창조적이라는 사람들이 성공한 데에 이들의 창조적 아이디어가 필요조건으로 작용한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이 기존 경제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온 것이 성공의 충분조건으로 작용해 왔음에도 주목해야 한다. 벤처 자본을 이용하고 전자 통신 등의 기존 기업들의 활력을 활용하는 신축성을 발휘했기에 가능했다. .
창조적 인간을 발견하려는 테크노크라트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기존 경제 시스템 속으로 창조적 요인을 받아들이고, 반대로 창조적 인간들이 창조적 사업을 이루는 과정에서 현 경제 시스템 속에서 협조자들을 발견하려 할 때 비로소 창조산업이 형성되고 박 대통령이 추진하려고 하는 창조경제의 문이 열릴 것이다.
김도훈 산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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