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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판사가 된 25년전 비행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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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판사가 된 25년전 비행소년

입력
2013.07.1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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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춘순 대전가정법원 판사 자기고백 화제

한 때 찢어지게 가난해 '비행'의 늪에 빠졌던 시골 소년이 가사ㆍ소년사건을 심리하는 법관이 돼 자신과 같은 '비행소년'들을 보듬고 있다. 고춘순(42ㆍ사법연수원 33기) 대전가정법원 판사 얘기다.

고 판사는 10일 발간된 대법원 소식지 '법원사람들'에 자신의 숨기고 싶은 과거를 털어 놓았다. 그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강원 영월 산골에서 태어나 어려운 가정환경을 극복하고 법관이 됐다.

그에게 위기가 찾아온 건 중학교 3학년이던 1986년. 탄광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무너진 갱도에 깔려 척추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병원에 오랜 기간 입원하면서 소년은 혼자 집에서 생활하게 됐다.

우여곡절끝에 이듬해 인문계 고등학교인 영월고에 입학했다. 형편상 인문계고 진학이 어려워 공고에 가기로 마음먹었으나, 큰 형수가 뒷바라지를 약속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고교 진학 후 어렵게 얻은 자취방으로 흡연과 음주를 일삼는 불량 학생들이 모였다. 한 번은 친구가 훔쳐온 오토바이를 무면허로 몰다가 오토바이 주인과 마주쳐 경찰서에 갈 뻔한 일도 있었다. 피해자와 어렵사리 합의한 어머니는 "다시는 안 그러리라 믿는다"며 더 이상 훈계하지 않았다.

이후 소년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대학 진학 후 사법시험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사시에 붙기까진 눈물의 수험 생활이 이어졌다. 고시원 야간 총무로 고학을 하면서도 학원 수강료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버거워 일주일이 넘도록 밀가루로 수제비를 빚어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서른이 되던 해 겨울, 비로소 사시에 최종 합격했다. 판사 임용 뒤 대전지법 청주지법 등을 거쳐 대전가정법원에서 소년 사건을 맡게 됐다.

가정법원에서 기획·공보 업무를 함께 맡고 있는 그는 '법원사람들'에 쓴 글의 말미에 "(판사로 일하는)지금은 업무가 과중해 스트레스가 누적되는 등 위험요인이 있으므로 적절한 '보호처분'이 필요하다"며 농담도 적었다.

고 판사는 "아이들이 커 나가는 과정에서 한 번씩 일탈 행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성이 나쁘다고 단정짓기보다 주변 상황을 살피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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