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아시아나항공 B-777기 사고와 관련한 대응에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미국 측이 기장의 조종 미숙에 초점을 두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자 우리 조사단이나 아시아나항공 측은 사고 원인에 대한 예단은 금물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데버라 허스먼 위원장은 8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에서 브리핑을 열고 "조종사에 대한 조사를 중점적으로 하고 있다"면서 "조종사들이 어떻게 사고기를 조종했고 어떻게 훈련 받아 어떤 비행 경험이 는지를 살피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다분히 조종사 과실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NTSB는 또 브리핑에서 블랙박스 예비 분석을 바탕으로 시간대별 고도와 속도를 제시했다. 충돌 34초 전까지도 착륙 권장속도인 시속 254㎞와 큰 차이 없이 활주로에 접근하다 급격히 속도가 떨어졌다고 밝혀 정상적인 비행이 아니었다는 것을 암시했다.
그러나 국내 전문가들은 "블랙박스 해독에는 수개월부터 2년 넘게 걸리는 경우도 많은데 사고 다음날부터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상황"이라며 "이런 발표가 자칫 초기부터 조종사 과실로 몰고 가는 선입견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체 결함 등 다른 요인에 비해 조종사의 실수에 무게를 두는 것은 일부 미국 언론의 보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미국 내 다수의 언론들이 이번 사고가 조종 과실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사실상 단정하는 듯한 보도 태도를 취하고 있다.
CNN은 "여객기를 조종했던 이강국 기장은 사고 기종인 B-777을 9차례, 43시간밖에 운항하지 않았다"면서 조종 과실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고, 워싱턴포스트(WP)도 "조종사 과실이 이번 사고의 주요 원인"이라면서 "조사 당국에서는 기체 결함에 따른 사고 가능성은 배제하고 조종사 과실에 가능성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 기사의 제목을 '경험이 거의 없는 아시아나 기장'으로 붙이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도 '아시아나 214편 조종사의 B-777 경험 부족'이라는 제목으로 "샌프란시스코항공에는 첫 번째 비행이었다"는 점을 부각했다.
NTSB와 미국 언론에서 조종사 과실에 무게를 싣자 우리 정부는 이 같은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최정호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장은 9일 "NTSB 발표 내용만으로 조종사 과실로 예단할 수 없다"면서 "다른 자료와 연계해야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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