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당국이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겠다고 나서면 나설수록 영세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들의 자금난은 오히려 더욱 심화된다. 이런 현상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재연되고 있다.
한정화 중소기업청장은 최근 중소기업금융지원위원회에서 소기업 및 소상공인의 자금애로 해소를 위해 6개 시중은행에 하반기 자금지원 계획의 차질 없는 추진을 당부했다. 또한 하반기 정책금융 가용재원이 제한적인 상황임을 감안해 시중은행이 중소기업 자금공급에 주도적 역할을 해 줄 것을 주문하고, 지나친 리스크 관리를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날 은행장, 경제단체장 등 중소기업관련 기관장들은 금년 하반기에 중소기업 대출(17개 은행)을 475조원까지 20조원을 늘리고, 은행권 꺽기 등 중소기업의 금융애로를 해소하겠다고 다짐했다.
양적으로 보면, 지난해 상반기 대비 금년 상반기 중소기업 대출금액은 크게 증가했다. 이는 신정부의 정책기조에 맞춰 대출태도 완화 유지 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일선 금융기관 점포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량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세일즈와 금리 깎아주기 경쟁은 금융기관들의 수지를 악화시킬 뿐 만 아니라 영세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의 자금조달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당국은 중소기업의 대출과 지급보증을 늘리겠다고 금융기관들을 독려하고 나섰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도록 강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일선 은행지점장들은 중소기업 대출이나 보증은 늘리면서도 여신공급에 따라는 위험을 줄여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변칙적인 방법을 궁리하고 있다.
일선 은행지점장들은 당국자들의 모순적인 주문에 적응하기 위해 은행대출이 필요없는 우량 중소기업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더 쓰라고 애걸하면서 기존 대출금리 마저 낮추어 주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때문에 우량 중소기업의 대출은 늘어나고 재무구조가 취약한 중소기업의 대출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이렇게 되면 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양적 목표는 달성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정작 어려운 중소 벤처기업을 지원하려는 정책 취지는 퇴색되고 중소기업간 양극화만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로 인해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중소 벤처기업들은 정부가 중소기업자금지원을 늘렸다는 통계 발표에 대해 분노를 감추지 못한다.
금융기관은 대기업의 오더나 수출신용장을 믿고 돈을 빌려 주어도 위험관리에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재무구조가 취약한 중소기업에 대출을 해주게 되면 그만큼 금융기관의 리스크가 커지는 평가구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보증기금이나 기술신보도 마찬가지이다. 보증한도를 늘린다고 하면서 정작 자금사정이 어려운 대출보증은 외면하고 보증이 필요없는 기업들에게 보증을 더 써달라고 구애하고 있는 실정이다.
창조경제 실현을 위해 창조금융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금융자금 확대공급이 창조경제시대의 주역이 되어야 할 중소 벤처기업인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현 상황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제 금융혁신을 통해 금융기관들이 중소기업을 제대로 평가하고, 미래현금흐름을 토대로 대출이나 보증을 해 줄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과거 기업의 매출실적이 없다고 대출을 해주지 않게 되면 신생 벤처기업들은 금융기관 대출을 이용할 수 없게 된다. 금융기관의 대출심사 규정과 위험자산평가기준을 바꾸어 벤처기업에 대한 대출을 일정한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
현재의 금융시스템과 토양에서는 벤처금융활성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왜 전당포식 금융이 지속되고 있는 지, 누가 이러한 금융관행을 제대로 혁신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창조금융은 민관협력과 함께 민간 전문가 위주로 금융이 이루어져야 성공가능성이 높다. 창조금융의 성패는 금융과 산업, 기업과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투자평가와 기업지배구조 관리 등을 종합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 그룹의 육성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병욱 동아시아지속가능발전연구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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