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안(西安)에서 둔황(敦煌)까지는 항공편으로도 3시간 가까이 걸린다. 웬만해선 지루하다 느껴질 법하지만 창밖으로 멀리 내려다보이는 광활한 사막 풍경은 여행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항로 왼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만년설과 빙하의 치롄(祁連)산맥도 그 자체로 경이적인 풍경이다. 벌써 10년 가까이 지난 희미한 기억이다.
사막의 여정은 둔황 외곽의 양관 누각에 올라 고비사막의 황량한 벌판을 바라보는 것으로 끝났다. 지난날 실크로드가 번성하던 시절 인도와 페르시아의 서역 남로로 향하는 관문이다. 불경의 깨우침을 얻으려는 구법승(求法僧)들과 서역의 상인들이 낙타에 의지하여 모래바람을 뚫고 왕래하던 길이다. 1,200여 년 전 신라 혜초스님도 천축국을 다녀오면서 이 길을 지났을 것이다.
중국의 서부와 미국 서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 그때 이 사막 길을 바라보며 떠올린 생각이다. 몬태나 아이다호 사우스다코타 와이오밍 유타 등 미국의 중서부 평원에서 두세 시간을 달려도 주유소나 햄버거 가게조차 구경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방목하는 소떼가 지나고 풀을 뜯는 버팔로 무리도 구경하게 된다.
그러나 이곳 중국 내륙에서는 오아시스 지역에 발달한 도시를 제외하고는 거의 막막 벌판이다. 들짐승의 울음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다. 홀연히 저 멀리 호수 위에 숲이 떠 있는 광경이 목격되지만 어디까지나 착시 현상의 신기루일 뿐이다. 이 사막의 벌판에서 밤이면 활기를 띠는 둔황의 야시장과 막고굴(莫高窟)의 채색화들이 더욱 인상적이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 한국 기업들의 진출이 늘어나고 있다. 서부로 통하는 중심지 시안을 비롯해 충칭(重慶) 청두(成都) 쯔양(資陽) 등에는 이미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 포스코 등 100개 이상의 한국 기업들이 진출해 있다. 이 일대를 거점으로 삼아 점차 내륙 진출의 기회를 늘리자는 뜻일 터다.
그렇지 않아도 산시(陝西) 쓰촨(四川) 간쑤(甘肅) 윈난(雲南) 등 서부 지역에는 세계적인 기업들이 앞 다투어 진출하고 있다. 동부 연안지역과의 경제적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2000년부터 시작된 서부 대개발 사업이 궤도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아직 저임금 일꾼들을 구하기 쉬운데다 기업 유치를 위한 지방정부 차원의 특혜가 적지 않은 덕분이다.
이를테면, 19세기 미국의 서부개척시대가 중국에서 다시 열리고 있는 셈이다. 석유나 천연가스, 철광석뿐 아니라 희토류 광물자원이 곳곳에 매장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투자가치는 충분하다. 지역 요충지인 시안의 경우 이미 진시황 시대의 통일 왕도였고, 당나라 당시 인구 100만 명을 넘어섰던 도읍이라는 점에서 지난날의 영예를 되찾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기업들도 아직 시작 단계라고는 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 더구나 일찍이 혜초 스님 이전에도 우리 조상들이 마음껏 활보하던 지역이다. 사막을 가로질러 둔황의 막고굴에 그려진 조우관(鳥羽冠) 차림의 젊은 주인공이 하나의 증거다. 고구려 쌍영총 벽화에 나타난 새 깃털을 머리에 꽂은 호방한 사냥꾼의 멀지 않은 핏줄일 것이 틀림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삼국 통일의 주춧돌을 놓았던 김춘추도 당나라와의 연합을 위해 장안(長安), 지금의 시안을 방문했을 만큼 교류가 잦은 편이었다. 가까이는 1940년대 초부터 광복을 이루기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충칭에 있었고, 광복군이 시안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우리 땅은 아니지만 움직이는 데는 거칠 것이 없었다는 얘기다.
물론 중국 내륙의 모래바람이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막을 관통하는 도로가 한순간 불어 닥친 바람으로 모래에 덮이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서부 지역으로 하나둘씩 뻗어나가고 있는 공장과 산업시설들은 더 이상 신기루만은 아니다. 중국의 서부 대개발은 우리 기업들에게도 새로운 오아시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허영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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