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시론/6월 29일] 테이퍼의 미학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시론/6월 29일] 테이퍼의 미학

입력
2013.06.28 12:01
0 0

요즘 시중에는 '테이퍼'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본래 '테이퍼'의 뜻은 서로 다른 종류의 도로가 만날 때 차량운행의 속도를 순화시켜 새롭게 만나는 길에 순응하도록 만드는 것을 말한다. 즉 노면표시를 통해 자동차가 느린 속도를 지속적으로 유도하여 운전자가 예측 가능할 정도로 도로를 축소시키며 교통사고를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경제에 있어서 지금의 도로는 무엇이고 새롭게 만나는 도로는 무엇일까?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은 '돈을 쉽게 만질 수 있는 도로'이고 앞으로 우리가 갈 길은 '돈을 어렵게 만져야 하는 도로'를 말한다. 통화량 관점에서 널찍한 대로에서 좁은 길로 들어선다는 것이다. 이럴 때에는 반드시 속도를 줄여야 한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양적완화 축소 발언은 금융시장의 급변동과 불안정성을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테이퍼'가 필요한 것이다. 충격완화를 위해, 위정자는 점차적으로 채권매수의 리듬을 줄인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그런 맥락아래, '테이퍼'에 대한 언급이 거듭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조용히 양적완화 축소 정책을 추진하면 되지, 세계만방에 알리고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는 걸까? 다분히 의도가 있을 것이다. 첫째 파국을 막기 위해 투자자들에게 위험에 대한 가이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둘째 마치 전 세계 금융종교의 정신적 지도자인양 신도들에게 자신의 역량과 영향력을 과시하는 것이고, 셋째는 월스트리트의 펀드매니저를 비롯한 미국의 금융공학 산업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친절한 경고 안내자 역할에만 집중할 필요가 있다. 즉, 선제적으로 한국식 '테이퍼'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작금의 경제관료 발언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우리 경제의 기초체질이 양호해 급격한 자본유출 가능성이 낮고, 중ㆍ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수출 확대 등의 기회요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직전에 강경식 당시 경제부총리가 "펀더멘털은 튼튼하다"고 한 말이 자꾸 상기된다. 6·25 때 이승만 대통령이 서울을 지키겠다고 시민에게는 안심하라고 해놓고, 자신은 남쪽으로 도망치고 한강다리를 끊었던 일과 일련의 사건들을 한 줄로 꿰어 보면 정부 관료의 발언을 무조건 믿기보다는 쇼크 발원지의 의도를 면밀히 분석하고 대응하는 편이 나을 성 싶다.

이번 버냉키 쇼크는 다분히 주식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물론 원자재 시장도 초토화가 되겠지만, 가장 큰 이목을 끄는 건 역시 주식시장이다. 달러공급을 줄여 달러의 가치를 높이고, 높은 환율을 바탕으로 아시아 시장에 풀어 놓은 달러까지 거두어들인다면 미국관점에서는 선순환이 된다.

외국인이 공매도로 집중 공략하면 주가 폭락을 막기 위해 개인이 버티고 기관이 도와주는 게 요즘의 세태다. 이 와중에 해외의 작전세력이 개입하면 외국인은 돈을 벌면서 높은 가치의 달러를 회수해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들에겐 선순환이고 우리에겐 악순환이 된다.

대응방법은 역시 '테이퍼'다. '테이퍼'의 미학이 필요하다. 첫째가 주식시장의 돈을 개인들에게 회수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이 금리의 선제적 인상이다. 주식시장이 엉망이 되고 난 후, 어쩔 수 없이 금리를 인상하는 것은 '테이퍼'가 아니다. 주식시장에서 돈을 회수해서 은행을 채워야 한다. 둘째, 물 흐르듯이 도류화 시켜야 한다. 인위적으로 주가 폭락을 막기 위해 기관 투자자를 동원하거나 환율 방어를 위해 정부가 개입하면 연기금이 부실화되고 외환보유고의 바닥이 드러나 제2의 IMF 사태를 초래할 것이다. 셋째, 최악의 경우, 심각한 위험에 처해 난파한 지방자치단체들이 피난할 금융 섬을 만들어야 한다.

시대의 흐름을 무시하고 한국은행이 금을 꾸준히 매입했던 것은 '테이퍼'라는 경고표지판을 무시하고 과속으로 좁은 길을 달린 것과 같다. 지도자가 똑똑치 못하면 결국 커다란 충돌 사고와 서민들의 울부짖음만이 결과물로 남는다는 역사적 교훈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홍창의 관동대 경영대학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