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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6월 28일] 관료사회가 창조경제 발목을 잡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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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6월 28일] 관료사회가 창조경제 발목을 잡는다면

입력
2013.06.2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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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주의는 그동안 주로 교육학적, 행정학적 용어로 사용돼 왔다. 18세기 프랑스 정부 관료들의 업무상 오만함과 불성실성을 빗대 경멸적 용어로 사용되기도 했으나, 궁극적으로 관료 사회의 규칙, 태도, 성향 등을 꼬집는 말로 통일되었다. 이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람이 막스 베버다. 그는 합법적으로 임명된 관(공)직자와 그에 따른 하위 관료의 위계적 관직 관계로 관료주의를 정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관료사회라 함은 융통성 결여, 창의성 말살, 자율성 제약 등 보편적 특징을 가진 집단으로 비춰진다. 그래서 관료들의 자질이라기보다는 조직 구조의 한계성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어릴 적 기억으로 고시에 합격하면 '개천에 용 났다'며 마을 어귀에 플래카드가 걸리고, 동네에선 잔치가 벌어진다. 관료사회 진입에 대한 보편적 평가이자 부러움의 대상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 '개천에 용 난' 그 인사는 점점 고향과 멀어지고, 공부와 거리는 멀었지만 어렵게 자수성가한 보통 사람들이 동네잔치를 대신한다. 몇 해 전 유명한 한 사회학 교수는 고시합격자 수와 고향 발전은 서로 반비례한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고시에 합격하는 순간, 관료사회로 진입하면서 고향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 보호에 더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자연히 고향 발전은 뒤로 밀린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공기업 인사에서 물을 먹은 꽤 유명한 한 인사는 이렇게 푸념했다고 들었다. "우리 사회는 해방 이후 어느 때보다 관료가 지배하고 있다. 자칫하면 1970년대 유행했던 '영자의 전성시대'처럼 관료사회의 비극적인 결말이 우려된다"고.

관료천국. 왜 이런 소리가 아직도 번져나갈까. 대통령제 하에서 5공화국 이후 대선 승자의 손에는 적든 크든 공기업 접수라는 선물이 쥐어졌다. 이게 낙하산 시비를 낳았고, 끊임없는 공기업 개혁이라는 빌미를 제공했다. 더욱이 공기업 채무가 극에 달한 지금, 개혁의 목소리는 그 강도를 더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박근혜정부가 전에 없이 전문성을 강조하고 지나치게 관료 중심의 자리를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전문성을 겸비한 집권당 내부 인사나 민간 전문가들은 자조 섞인 푸념으로, 인사에 대한 불만으로 관료주의를 거론한다. 급기야 국가정보원장까지 나서 현실을 직언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창조경제는 본시 관료사회와는 맞지 않다. 오죽하면 관료사회를 융통성 결여, 창의성 말살, 자율성 제약을 특징으로 꼽았을까. 학문적 지식을 빼고 상식선에서 판단해보자.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의 대상이 관료들이라고 떠들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갔는가. 창조경제의 핵심은 아이디어 창출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은 실적과 담보 없이 은행의 벽을 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그게 관료화한 조직의 생각이고 행동방식이다. 물론 성실하게 업무에 임하는 공무원들을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렇다면 많은 공기업 조직을 창조경제 체제로 이끌 묘수는 없는 것일까? 간단하다. 남은 공기업 인사에서 추천위를 구성할 때 관료들을 제외시키면 된다. 그들이 목숨처럼 부지해온 그 연결의 끈을 쉽사리 놓을 리는 만무하다. 혹시 박 대통령의 결심이 있어 그렇게 되더라도 기상천외한 리모컨을 동원해 기득권을 굳건히 지켜 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집권당 내부에서부터 인사의 폭을 넓혀가면 자연스럽게 관료주의를 배격할 수 있다. 집권당 내부에도 전문가들이 얼마든지 있다. 누가 봐도 뻔히 아는 실력 있는 인사들을 외곽으로 돌리고 관료들에게만 그 기회를 제공한다면 창조경제는 물건너 간다.

이쯤에서 일자리의 대탕평책이 나와야 할 것이다. 창조경제는 경직된 관료보다 좀 무질서하고 엉뚱한 싸이의 발상에서 기인했음을 직시해야 할 때다. 늦었지만 이쯤에서 손질하는 것이 여론의 대세인 것 같다.

김진태 한국정책홍보진흥회 진흥원장 ㆍ사회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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