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의 일이다. 여의도의 한 지하철역을 나서는데 말끔한 청년이 다가오더니 여러 쪽으로 구성된 전단을 나에게 주었다. 뭔가 하고 살펴보니 영어 공부를 하라는 거였다. 토익 토플 직장인반 학생반 아침반 야간반 등 학급도 참 많고 강사도 여러 명이었다. 모두가 미끈하고 실력 있는 영어 전문가들로 보였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전단을 나눠주던 청년의 표정이었다. ‘이놈한테 이걸 나눠 줘? 말어?
이거 주면 읽어보기나 할라나?’하며 쭈뼛쭈뼛 망설이는 표정이 역력했다. 머리가 허옇게 센 사람에게 토익 공부하라고 권한다는 게 그 자신도 좀 이상하고 어색했던 모양이다. 나도 받자마자 실소를 했으니까 내가 그런 거 받을 ‘군번’은 이제 아닌 게 분명한 것 같다.
그런데도 그 청년이 나에게 전단을 준 것은 배포작업을 빨리 마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 청년은 영어강좌를 하는 학원에 소속된 직원처럼 보였다. 아마도 전단 배포를 하는 수고비를 따로 받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몇 푼 되지 않지만 돈 받고 그 일을 하는 이른바 ‘홍보지 아줌마들’에게는 전단을 나눠주는 게 큰일이다. 사람들은 이제 전단 같은 건 귀찮아서 잘 받지 않으려고 한다. 최대한 빨리, 많은 분량의 ‘찌라시’를 다 나눠줄 수 있어야 유능한 아줌마다.
추운 겨울에는 손도 빼지 않고 걷는 사람들이 많아 전단 나눠주는 게 더 힘들어진다. 지하철역 출구에서 앞을 막아서는 아주머니들을 피해 일부러 길을 돌아가거나 고개를 푹 숙이고 걷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다. 하기야 매일 같은 길을 걸어 출근하는 사람들로서는 한 번 본 전단을 또 받아 볼 이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20년도 더 전에 개봉된 ‘크레이지 보이’라는 프랑스 코미디 영화가 있었다. 뭔가 사업(?)을 시작한 크레이지 보이들이 길거리에서 홍보 전단을 나눠주는데, 행인들은 읽어보지도 않고 받자마자 구겨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걸 본 크레이지 보이들은 전단을 마구 구겨서 나눠준다. 그러자 행인들이 이게 뭔가 하고 궁금해서 펴 보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주는 대로 전단을 다 받는 편이다. 그런데 전단을 외면하거나 받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아 길거리에서 고생하는 아줌마들이 안쓰러워 보였다. 그래서 어느 날 거의 매일 보는 똥똥한 아줌마(키도 되게 작다)에게 ‘크레이지 보이’ 영화 이야기를 해주며 그렇게 한번 해보라고 코치를 한 적이 있다. 반응은? 한마디로 ‘이 양반이 미쳤나?’ 하는 표정이었다.
쳇, 싫으면 관두라지. 나는 자기들이 안쓰러워 특별히 알려준 건데, 남의 호의를 이렇게 깔아뭉개도 되는 거야? 나는 더 말도 못 붙이고 돌아섰지만, 그렇게 기발한 방법을 쓰면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에는 지금도 조금도 변함이 없다.
읽어 보지도 않고 바로 버리더라도, 또 남자에게 슬기로운 출산방법이나 효과적인 산후조리법을 알려주는 내용만 아니라면 뭐든지 전단은 받아 주는 게 좋다.
맨 앞에서 말한 그 청년은 눈치를 보아가며 나에게 전단을 주었지만 조금 더 지나봐, 이제는 그런 거 아예 나눠주지도 않는다. 그것은 ‘너는 이 분야에선 종 친 인생이야. 너한테는 기대할 게 없어.’라고 알려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무엇이든 줄 때 고맙게, 즐겁게 받아야 하지 않겠나.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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