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연구원이 26일 내놓은 비과세ㆍ감면 제도 정비안은 부유층과 대기업의 과다 혜택을 축소, 세입 기반을 넓히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마디로 명목 세율 인상 대신 실효세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사실상의 증세효과를 내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박근혜정부가 세목 확대나 세율 인상 등 직접적인 증세 없이 복지 재원 등 공약 이행 재원 135조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혀온 점을 볼 때 새삼스러운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 같은 방안이 실행에 옮겨지면 연 30조원에 달하는 비과세 감면 수혜자 및 기업들의 저항이 불가피해 보인다. 취약 계층에게는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비과세·감면 제도는 정부가 정책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업이나 가계를 지원하는 세금 감면을 뜻하는데, 이로 인한 국세 감면액은 최근 몇 년간 30조원 안팎 수준이었다. 정부는 2015년까지 총 5조7,000억원 규모의 비과세·감면제도를 정비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우선 조세연구원은 현행 비과세ㆍ감면 제도가 기득권화돼 있거나, 실효성이 없는 것이 많다는 점을 들어 정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가령 저축지원 비과세 감면의 경우 저소득층의 저축 장려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소득 하위 40%까지는 저축 여력이 아예 없어 결국 고소득층과 고액자산가들이 혜택을 입고 있다. 부동산투자펀드, 장기저축성보험 등은 한도 없이 비과세가 가능해 역시 자산가들의 효율적인 세테크 수단이 되고 있다.
보험료와 의료비, 교육비, 기부금 등은 동일한 금액을 소득 공제하는 경우 저소득자보다 고소득자에게 혜택이 크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따라서 조세연구원은 이번 비과세·감면 제도 개편의 기본방향으로 ▦세제 정상화 ▦세 부담 형평성 제고 ▦재정의 합리적 배분을 제시했다.
우선 소득세와 금융과세 부문은 고소득층에 유리하게 규정된 비과세·감면제도를 정상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연구원은 근로과세 소득공제 중 인적추가공제와 특별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특히 보험료공제, 의료비공제, 교육비공제, 기부금공제 등 특별공제도 고소득자에 유리하다고 연구원은 설명했다.
현재 특별공제 한도를 2,500만원으로 정하고 있지만, 평균소득 5억원이 넘는 고소득층에게만 적용돼 실효성이 적은 편이다.
다자녀 추가공제, 출산·입양자공제, 6세 이하자 공제, 부녀자공제 등 인적추가공제는 기존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와 자녀장려세제 도입과 연계해 세액공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조세연구원은 "소득이 많을수록 높은 세율을 적용 받기 때문에 동일한 금액을 소득공제받더라도 실질적인 세제혜택은 고소득층이 더 크다"며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면 고소득층 부담은 늘지만 중산층 부담은 거의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액 금융자산가에게 더 큰 혜택이 돌아가는 금융소득종합과세 분리과세 대상 금융상품도 혜택 제외를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조세원구원은 "최근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을 2,000만원으로 낮춰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했지만 분리과세나 비과세 금융상품에 대한 후속조치가 뒤따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투자 및 연구개발 관련 비과세ㆍ감면제도도 고용을 유발하는 방향으로 개편될 전망이다.
적자 상태인 중소기업은 세제지원 혜택을 받을 수 없으므로 세제지원보다는 세출 예산 등 다른 방식의 지원이 바람직하다고 연구원은 제언했다. 특히 중소기업지원 분야에서는 고용창출과 창업ㆍ에인절투자 지원과 관련해 조세지원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향의 정비가 추진될 전망이다.
홍기용 한국납세자연합회 회장은 "조세정의 차원이 아니라 복지 재원 마련 차원에서 세제 개편을 추진하다 보니 사실상 증세를 노린 비과세 감면 정비안이 마련됐다"며 "좀 더 점진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연구ㆍ개발(R&D)이나 고용창출 비과세 감면은 기업의 성장 동력 확충과 국가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유지돼 왔다"며 "이를 줄이는 것이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에 보탬이 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박진용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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