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탐사선 온누리호는 서태평양의 적도 해역에 도달했다. 괌에서부터 출발해 4일 간을 밤낮 없이 달려 도착한 적도의 바다는 고요하고 잔잔하다. 이곳에서 주상시료채취기(피스톤 코아)는 1,800m 해저로 내려가 심해의 퇴적물을 담아 온다. 5m 가량의 차디찬 퇴적물이 긴 원통에 담겨 올라왔다. 심해퇴적물은 천 년에 겨우 1㎝가량이 쌓일 뿐이어서, 배 위로 올라온 퇴적물은 무려 50만 년 동안의 세월을 의미하는 셈이다.
흰 색의 퇴적물 속에는 유공충 규조류 등 플랑크톤의 화석으로 가득하다. 이들은 오래 전 바다 속을 떠다니며 살다가 죽으면서 껍데기를 남겼다. 지구의 역사 동안 끊임없이 변화했던 기후와 환경은 바다의 온도나 염분, 화학 조성의 변화와 함께 했을 것이다. 다양한 조건에서 나타났던 플랑크톤의 종류를 통해서 당시의 환경을 유추할 수 있고, 그들 껍데기의 화학 성분을 분석해 보면 당시의 해양의 화학 조성이나 주변의 온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정보들을 종합하면 과거의 해양환경을 복원해낼 수 있고, 이것이 고기후학(고해양학)이라 불리는 학문에서 퇴적물을 이용해 진행하는 연구 방식 중 하나이다. 오늘날의 지구는 과도한 화석 연료의 사용과 그에 따른 이산화탄소 방출로 더워지고 있다. 현재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약 400ppm에 이르렀고, 이는 산업 혁명 이전에 비해 약 40% 증가한 수치이다. 이산화탄소의 농도 증가에 따른 앞으로의 기후변화와 지구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려면 비슷한 조건의 과거 지질 시대를 참고할 만하다.
고해양학자들이 해양퇴적물을 이용해 연구한 결과, 현재와 같은 높은 이산화탄소 농도는 지금으로부터 약 400만 년 전, 인간이 존재하기 훨씬 이전에 나타났음이 밝혀졌다. 이때의 해수면은 지금보다 약 25m 높았고, 지구 전체의 온도는 약 3도 높게 유지되었다. 남북극의 온도는 이보다도 훨씬 높았고, 북극에는 만년설이 존재하지 않았다.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해수면 상승과 온난화, 빙붕의 붕괴는 이처럼 과거의 퇴적물에 이미 기록되어 있는 현상인 것이다.
이와 같이 고기후학(고해양학)은 마치 고고학처럼 지구가 남긴 흔적을 통해 과거의 기후나 환경을 탐구한다. 역사를 통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짐작하듯, 과거에 일어났던 기후 변화와 그에 따른 지구 환경의 변화를 추적함으로써 우리 앞에 닥칠 기후 변화에 대한 효율적 대응을 기대할 수 있다. 불과 100년 이하의 관측 데이터를 통해서는 인간의 영향, 자연적 변화의 상대적 중요성, 기후변화의 규모나 지역적 방향을 예측하는 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온누리호가 끌어 올린 심해퇴적물은 서태평양 적도 해역의 해양환경을 기록해 깊은 바다 속에 보존하고 있었다. 지질 시대 동안 해양의 변화를 연구하는 일은 많은 예산과 기술을 필요로 하므로, 전통적으로 미국이나 영국, 일본 등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특히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한 해저 시료 시추 사업들은 학자들에게 양질의 연구 시료를 제공하여 고해양의 이해에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국제공동해양시추사업(IODP)의 회원국으로 가입하는 등 고기후학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국가 연구개발은 아직 응용기술이나 실용적 분야로 집중되어 있고, 기초과학 분야로의 지원은 아직 부족하다. 기후변화가 인류가 당면한 중요한 과제인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고기후 연구 분야로의 집중적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은 현재뿐 아니라 과거의 기후 변화 추세를 파악하여 전 지구적 기후변화에 따른 지역적 환경 변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는 깊은 바다 속에 잠자고 있는 과거와 미래 기후변화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오늘도 대양을 누빈다.
서인아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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