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국책사업이나 정부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공공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적 차원의 공론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안전행정부는 최근 '정부 3.0 비전 선포식'에서 민-관 협치를 위해 대형 국책사업이나 주요 국정과제에 대해 온라인 여론수렴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5,000억원 이상 국책사업을 시행할 경우 이해관계자는 물론 전문가, 일반국민이 참여하는 온라인 전자토론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민신문고 사이트를 통해 온라인 공청회나 설문조사, 전자투표 등을 실시해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규모 국책사업이 경제적 효율성이나 사회적 합의와 무관하게 정치적 논리에 따라 대통령의 선거공약이나 일부 관료 및 전문가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어 추진된 것이 사실이다. 4대강 사업이나 경인운하 건설, 새만금간척사업, 제주해군기지건설 등에서 불어진 공공갈등은 대부분 사업추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상태에서 정부가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빚어졌다. 이러한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의지와 전략은 늦은 감이 있지만 크게 환영할 일이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사용후 핵연료를 국민적 합의를 통해 처리하기 위해 이달 중으로 공론화위원회 구성을 서두르고 있다. 현재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에서 보관하고 있는 사용후 핵연료가 2016년이면 포화상태에 달할 것으로 예상돼 중간저장시설의 확보가 시급하지만, 예전처럼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을 확보하는 데만 19년이나 걸렸고, 이 과정에서 엄청난 사회경제적 비용을 지불한 마당에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않고는 전국 어디에서도 중간저장시설 부지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론기구의 설립이나 공론화방안을 보면 진정성에 다소 의문이 간다. 국민적 합의를 통해 국책사업이나 정부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논의기구의 중립성과 공정성 확보가 핵심적인 선결과제이기 때문이다. 공론화위원회 구성이나 운영이 정부로부터 영향을 받거나, 특정 계층이나 집단에 유리한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된다면 국민적 합의에 도달하기 어렵다.
사용후 핵연료 처리를 위한 공론화위원회 구성에 환경단체 등에서 참여를 꺼리는 이유는 정부가 중간저장시설 건립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는 원전건설 백지화를 포함한 모든 대안을 놓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주관하는 전자토론도 과연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이나 정책을 권익위가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의견을 수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남아 있다. 또한, 여론수렴방식이 온라인 토론에 한정될 경우 스마트폰과 같은 첨단 정보기기의 사용이나 접근이 어려운 사회적 취약계층의 의견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따라서 사회적 공론형성을 위해서는 정부로부터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기구에서 광범위한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수렴 작업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학계에서는 수년전부터 프랑스의 국가공공토론위원회(CNDP)와 같은 공론기구의 설립을 주창해 왔고, 지난해에는 국가공론위원회 설립을 위한 법안까지 마련돼 국회에 상정되었다. 그러나 이 법안에 대해 국회와 정부 측에서 미온적이어서 통과여부는 매우 불투명하다. 국회의원의 입장에서 보면, 갈등조정 역할을 담당해야 할 자신들의 위상이 국가공론위원회로 넘어갈 것을 우려할 수 있고, 정부의 입장에서는 사업추진의 지연과 소모적 논쟁에 휩싸이는 것을 꺼려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사회적 합의형성을 토대로 국책사업이나 정부정책을 추진하려는 진정성을 보이려면 논의기구의 독립성 보장과 함께 온라인 토론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의 토론도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론 확산을 위해서는 공론화 과정에 언론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정정화 강원대 공공행정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