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곳간'을 지켜라.
'버냉키 쇼크'의 후폭풍으로 금융시장이 급변하면서 무엇보다 급격한 외화유출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정부도 이를 감안해 다중의 방화벽을 준비해 놓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1997년과 2008년 외환보유액 감소를 경험했던 만큼 위기 방어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사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는 예고된 사항이었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이 신흥국에 풀린 유동성을 회수하는 속도가 예상보다 빠른 상황이다. 더욱이 우리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높아 아무리 펀더멘털이 튼튼해도 언제든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 때문에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해 시장을 진정시킬 실탄이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말이다. 정부가 23일 관계기관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거시금융경제회의에서 "자본유출입이 과도하면 거시건전성 조치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힌 것도 그 때문이다.
정부는 일단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이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올해 9조1,000억원이 유출됐지만 이는 전체 외국인 주식 보유잔액(5월말 기준 414조원)의 2%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 더욱이 5월말 현재 외환보유액은 3,281억달러로 단기외채(1,222억달러) 등을 감안할 때 대외안전판으로 실탄은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경상수지도 15개월째 흑자를 이어가고 있어 든든한 힘이 되고 있다. 지난 4월 경상수지는 39억7,000만달러로, 1~4월 누적흑자 규모는 전년보다 3배 늘어난 139억4,000만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상황이 그리 간단치는 않다. 정부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자부할 수 있지만, 과연 시장 참여자들이 이를 신뢰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한번 시장에서 급격한 쏠림 현상이 나타나면 불안심리는 어떤 경제 논리로 설명이 안 된다. 실제 리먼 브러더스 사태 직후인 2008년 9월말 당시 2, 396억달러의 외환보유고를 쌓아놓고도, 환율 방어에 많은 돈을 쏟아부으며 2,000억 달러 선이 위협 받자 시장은 불안하게 생각했다. 한마디로 곳간을 아무리 채워놓아도 불안심리를 잠재울 '마지노선'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시장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선제적이고 단호하게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단 23일 거시경제정책 조정회의에서 국채 시장에서 7월 장기채 발행물량 축소 등을 통해 유동성을 탄력적으로 조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도 그 중의 하나이다. 3년물이나 5년물보다는 장기채 금리가 가파르게 오른다는 점을 감안, 장기채 규모 축소를 통해 시장 안정을 위한 메시지를 던지겠다는 의도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최근 채권 시장이 안 좋고, 그 중에서도 장기채 시장의 불안 요소가 크다는 점을 감안해 7월 축소 발행 계획을 내놨다"며 " 채권시장에 불안심리가 있어 이번 축소 계획은 시장 대응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채권시장 이외에는 '주의 깊게 모니터링하면서 필요시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상황이 악화하면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외환시장 구두개입→시장에 유동성 공급→자본유출입 규제 등으로 강력한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일정 규모 이상의 자본이 유출되거나, 현재 1,100원대인 환율이 갑자기 크게 뛴다면 정부가 대책을 내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진용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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