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이른바'버냉키 쇼크'로 금융시장이 요동 치면서 그 파장이 실물경제로 전이될 가능성에 대비, 사실상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기업들은 엔저쇼크로 수출경쟁력이 약화된데다 미국의 출구전략으로 대거 외국인 자금 유출 가능성을 염두에 둔 환율변동 리스크 관리와 하반기 유동성 경색을 대비한 자금확보 대책마련에 나섰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현대ㆍ기아차 등 주요 기업들은 전담팀을 마련해 실시간으로 환율 추이를 예의주시하며, 업종별 특성에 맞춰 환율 급변동 대응전략을 강구 중이다. 환율 변동성이 확대되면 수출입기업의 수익성에 직접 영향을 미쳐 환율이 상승하면 수입업체들은 생산원가가 높아지고 수출기업들은 경영 불확실성이 커진다. 특히 재정난에 빠진 유로존을 대신해 그 동안 주요 수출시장이었던 중국 등 신흥시장이 양적완화 여파로 경기가 위축될 경우 하반기 수출기업들로서는 타격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사내 환관리위원회를 마련한 SK그룹은 자체경제연구소가 지난주 말 직접환율 변동에 따른 업종별 리스크 요인을 분석, SK에너지 등 관련 계열사에 전달하는 등 환율 리스크 최소화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SK에너지 관계자는 "환율이 상승하면 수입비용이 커지고 환율이 급락하거나 급상승하면 환차손이 불가피하다"며 "환헤지 상품을 활용해 환율 상승세가 장기화될 경우 원유 선적 시점의 계약 비중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1조원 규모의 영구채를 발행한 포스코는 단기적으로 신흥국의 환율변동성을 키우고 성장률을 낮춰 철강 수요를 악화시킬 것으로 보고 국내외 시장 상황을 점검하며 환율 등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실물경제에 타격이 있을 수 있는 만큼 환위험 관리나 금리상승 등 자금조달의 단기적 변동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올해 5월까지 전년대비 7.2% 증가했으나, 양적완화 축소와 금융시장 불안에 따라 하반기 자동차 수요가 둔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현대차는 환율 추이 등을 예의주시하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내실경영을 강화해나갈 계획이다
신용도가 낮고 재무구조가 불안정한 중소기업과 해운ㆍ조선ㆍ건설 등 취약업종 기업들의 자금난은 심화될 전망이다. 향후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파가 커질 경우 신용경색으로 이어지면서 자금난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증시침체로 현재 이들 기업의 유일한 자금조달 창구인 회사채 거래는 이미 크게 줄어 들고 있다. 회사채 거래량은 19일 7,565억원에서 20일 3,835억원으로 49.3% 감소했다. 지난해 9월 웅진 사태와 최근 STX팬오션의 법정관리 신청 등으로 회사채 시장이 냉각된 상태에서 '버냉키 쇼크'는 이들 기업의 자금경색을 가중시키고 있다. 한 중견기업 재무담당 관계자는 "차입금 만기가 다음달인데 도저히 돈 만들 방법이 없다"며 "2년 전 채권시장 호황 때 끌어 쓴 500억원을 상환하지 못하면 부도가 날 판"이라고 말했다.
반면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미국 경기의 회복을 의미하는 만큼 대미 수출 확대를 사뭇 기대하는 기업도 있다. 글로벌 유동성은 위축되겠지만, 미국의 경기 회복에 따른 유동성 개선으로 일정부분 상쇄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삼성전자는 장기적으로 미국시장의 경기회복을 판매확대의 호기로 보고 있다. 다만 중국 등 신흥국 시장이 경기가 악화될 수 있어 아시아와 중동 지역 등의 영업망을 재점검하고 있다
항공업계은 '버냉키 쇼크'로 원화 약세와 유가 하락을 예상하면서 비용 절감을 기대하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비행기 리스료나 유류 구입비가 달러 베이스기 때문에 제조업과 다르게 원ㆍ달러 환율이 올라갈수록 좋다"며 "유가도 1배럴당 1달러가 떨어지면 연간 수천만달러를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인성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연구실장은"유동성 자체가 줄어드는 것은 나쁜 뉴스지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해소된 부분은 긍정적"이라며 "기업들로서는 이 상황에서 견딜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신뢰를 시장에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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