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방침이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금융시장에 미칠 충격파가 우려되고 있다. 주식 채권 환율의 트리플 약세가 심화될 것이라는 전문가들 의견이 다수다. 금융시장의 불안은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에 결국 신흥국 경제 전반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당장 우려되는 사태는 신흥국 주식시장에서의 대규모 자금 엑소더스 이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 증시에서 펀드자금이 미국 등 선진국으로 이동하면서 주가가 급락하는 현상이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은 최근 5년간 12조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돈을 시장에 풀어냈다. 이 막대한 자금의 대부분이 신흥국에 유입됐고 그로 인해 신흥국 증시는 이른바 유동성 장세를 구가한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는 글로벌 자금의 역이동 사태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달러화 강세 및 금리상승이 일어나 글로벌 자금을 다시 미국이 빨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신흥국 시장에서 천문학적 돈이 증발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신흥국 자금의 선진국 유입은 이미 가시화하고 있다. 이머징 시장에서는 지난달 29일부터 최근까지 78억 달러가 미국 등으로 유출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른바 ‘달러 캐리트레이드의 축소’가 시작된 것이다.
한국시장 비율이 11%인 글로벌이머징(GEM) 펀드의 경우 최근 3주 동안 81억 달러가 빠져나갔다. 반면 미국 주식형펀드로는 자금이 5개월 연속 순유입되고 있는 추세다.
국내 펀드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브릭스 펀드에서는 최근 한달간 1,434억원, 중국 펀드에서는 2081억원, 러시아 펀드는 298억원, 중남미 펀드는 109억원이 각각 유출됐다.
신흥국의 통화 가치도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미 부분적으로 현실화되고 있으며 앞으로 확대될 공산이 크다. 지난달 벤 버냉키 미국 연준 의장의 양적완화 축소 시사 발언 이후 신흥국 통화 가치는 일제히 급락했다. 남아공 랜드는 9.3%, 인도 루피는 8.0% 급락했다. 국내 시장의 한 관계자는 “아시아 등 신흥국 채권시장에서 글로벌 자금이 이탈하면서 단기적으로 금리 상승 및 통화 가치 하락 현상이 급격히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기반이 약한 신흥국의 경우 자칫 외환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달러 금리 상승으로 인해 이자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 4년간 외채가 연평균 19.2% 증가했다. 터키의 단기외채는 외환보유액의 130.8%에 달하고 아르헨티나는 87.0%에 이른다.
미국 양적완화 축소로 금융 불안에 노출될 가능성이 큰 국가로는 중국 브라질 인도네시아 터키 멕시코 인도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글로벌 자금 유입이 다른 신흥국들에 비해 많지 않아 상대적으로 타격이 크지 않겠지만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또한 채권금리 상승(채권가격 하락)으로 채권 ‘버블’이 꺼지면서 취약 업종에서 유동성 악화가 발생하고 가계부채 문제도 더 어려워지는 등 실물경제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칠 것이 우려된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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