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은 기관장이 무더기로 나왔다. 전체 평가대상 96명 가운데 18명이 각종 비리에 연루됐거나 역량 부족으로 해임 건의나 경고를 받았다. '최우수' 평가를 받은 기관장은 단 한 명도 없다. 공기업 대부분이 방만하게 경영되고 있음을 새삼 보여준다.
무엇보다 공기업 경영을 책임진 이들이 상습적인 사고에도 원인을 찾아 해소하는 노력에 소홀한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전력난을 초래한 원전 '짝퉁' 부품 사태나 광산의 잦은 안전사고가 바로 그런 대표적 사례이다. 누적되는 경영 부채를 해결하려는 의지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 큰 탈 없이 임기를 채우면 그만이라는 안이한 풍토가 어디에나 뿌리 깊다.
이런 현실에 비춰 볼 때,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는 불가피한 해법이다. 곳곳에서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나는데도 정치사회적 논란을 피해 인적 쇄신과 경영 혁신을 미룬다면, 공기업의 방만한 운영과 무너진 기강을 바로 잡을 수 없다. 리더십과 도덕성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 기관장들은 단호히 몰아내야 마땅하다.
그러나 경영실적 평가를 새로운 낙하산을 심는 빌미로 악용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오랜 악습을 되풀이하는 것은 공기업은 물론이고 정권에도 결국 부담으로 되돌아온다는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공기업 기관장 선임에 이른바 국정 철학 공유 여부를 아주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경영 전문성과 경륜은 전혀 없이 정치권 주변을 기웃거린 이들을 위한 논공행상용으로 쓰는 것은 위험하다.
경영실적 평가가 과연 객관적으로 이뤄졌는지도 잘 살펴 볼 일이다. 일부에서 지적하듯, 사업 실패와 부실로 논란을 빚고 있는데도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면 평가의 신뢰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정치적 오해를 피하기 위해 기관장 검증대상을 늘리도록 했다지만, 평가 기준부터 신뢰성이 의심받아서는 곤란하다. '그 타령이 그 타령일 뿐'이라는 비아냥을 피하려면, 투명한 인사는 공정한 평가에서 시작돼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