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무대에서 첩보전은 언제나 상상을 초월하지만 영국 일간 가디언 16일자 보도는 다시금 혀를 내두르게 한다. 보도에 따르면 영국정부는 2009년 4월과 9월 런던에서 잇따라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과 재무장관회의에서 각국 대표단을 대상으로 컴퓨터 해킹과 전화 도청을 했다. 전세계 이목이 쏠린 특급 국제행사에 외국 요인들을 대거 불러놓고서 조직적으로 정보를 훔쳐가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번 보도는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광범위한 감청망 실체를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이 추가로 공개한 기밀문서를 인용한 것이어서 신빙성을 담보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영국은 17~18일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 개최국이어서 이번 보도는 국제사회에 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2009년 당시 주역은 M15, M16과 함께 영국 3대 첩보기관으로 꼽히는 GCHQ(정보통신본부)이다. GCHQ는 각국 대표들의 스마트폰을 해킹해 이메일 내용과 음성통화를 24시간 도청했다고 한다. 각국 인사가 누구와 전화 하는지를 실시간 그래픽 화면으로 구성해 GCHQ 작전실 내 대형 스크린을 통해 들여다 봤다고 하니 대상자들의 사적 영역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것이다. 회담장에 편의시설로 제공된 인터넷카페도 덫이었다. 각국 대표단이 카페 컴퓨터를 통해 자국 기관의 보안 사이트에 접속하는 순간 GCHQ는 '로그인 키(key) 정보'를 확보했다. 접속ID와 암호가 고스란히 넘어간 것이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들이 바로 G20 영국 대표단에 전달돼 협상에 활용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번 보도가 다시 확인해주는 것은 이제 국제사회에서 주요 선진국들의 해킹이나 도감청이 테러 등 국가안보 사안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경제를 논의하는 국제 재무장관 회담에서까지 그런 비열한 행위가 무차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 21세기 현실이다.
G20 회원국인 한국의 각종 국제활동 또한 도감청 및 해킹 대상에서 예외일 수 없다. 우리 정부기관은 물론이고 주요 기업들의 해외 보안 매뉴얼이 업그레이드되어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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