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국내 4위 조선사인 STX조선해양만의 문제가 아니다. '빅 3(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를 제외하고 업계 전체가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
조선업계 고위 관계자는 최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조선업계의 최대 호황기에 비해 지금의 상황은 암울함 그 자체라고 말했다. 단순히 불황으로 수주가 반토막 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건조시설의 공급 과잉이 발생해 글로벌 업황이 과거처럼 회복돼 다시 호시절이 온다고 해도 국내 업계 전체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조선업종만이 아니다. 경기 변동에 따라 크게 출렁이는 해운업도 선두 업체를 포함해 업계 전체가 적자에 허우적대거나 부도로 나가 떨어져 있다. 겉만 멀쩡할 뿐 속은 골병이 들어, 조만간 쓰러질 기업들이 적지 않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건설업계도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고,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최근 들어 경기가 나빠진 일부 제조업체들도 심각한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이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 보고에서 밝힌 기업 구조조정 개선계획의 알맹이는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해 신속하고 일관성 있게, 그리고 엄격하게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채권은행이 중심이 돼 취약업종별로 워치리스트(요관찰 기업목록)을 작성,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선제적으로 관리해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다음달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2013년 기업 신용위험 평가 결과를 발표한다고 공개하면서, 단순히 재무상태만이 아니라 잠재 리스크까지 자세히 들여다 보겠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현재 시장에서는 구조조정 대상 대기업으로 30여개가 추려질 것으로 관측하는데, 이 작업을 채권은행을 중심으로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금감원은 이와 함께 기업 구조조정의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의 연장에도 힘을 모으고 있다. 현행 기촉법은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도입돼, 올해 말까지만 유효한 한시법이다.
기촉법에 따르면 기업이 주채권은행에 워크아웃을 신청할 경우 주채권은행은 채권금융기관협의회를 소집한다. 이어 금융감독원은 감독원장 명의로 채권 금융기관들에게 기업의 채권 ·채무 상환을 유예해 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채권금융기관협의회는 소집일로부터 7일내 회의를 열어 워크아웃 개시 여부를 결정한다. 여기에서 개시 결정이 나오며 전체 채권신고액 기준 75%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기촉법이 소멸되면 기업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후 개별 금융기관의 채권 회수를 막을 방법이 없게 된다. 또 워크아웃 개시도 채권신고액 기준 75%가 아닌 100%의 동의가 필요해 구조조정 절차가 그 만큼 더 어렵게 되는 것이다.
금감원은 "STX, 쌍용건설 등 구조조정 중인 대기업의 자금 상황이 악화되면 은행들의 부실 발생이 우려된다"며 "특히 기촉법이 연말에 실효되면 기업구조조정 추진의 법적 근거를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이와 함께 웅진그룹 워크아웃 과정에서 보듯 구조조정중인 기업과 오너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기존 경영자 관리인 선임제도(DIP)'의 보완도 추진 중이다. 이 제도가 기업 살리기 보다는 기존 경영진의 경영권 유지와 채무감면에 악용되는 부작용이 있다는 지적에 따라 채권금융기관 대표를 공동 관리인 또는 감사로 선임하는 등 보완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여신 규모 이외에 시장 차입금을 포함한 기준으로 주채무 계열을 선정해 주채권은행이 책임 있는 자세로 워치리스트에 대한 관리감독을 하고, 워크아웃 기업의 경영 정상화를 조속히 추진토록 유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진용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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