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국에 고위급 회담을 전격 제안했다. 북한은 어제 국방위원회 대변인 '중대 담화'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포함한 현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고위급 대화를 갖자고 제의했다. 북한의 대미 대화 제의는 이달 초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북한 핵 불용'을 다짐한 뒤 나온 점이 먼저 주목된다. 또 다음 주 한중 정상회담을 앞둔 것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다각적 압박에 나름대로 유화적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움직임은 일단 긍정적으로 볼 만하다. 숨은 속내가 무엇이든, 올 초 핵실험에 이은 유엔 안보리 제재에 '전쟁 불사'를 외치며 위기를 조성한 태도를 바꾼 점은 어쨌든 다행스럽다. 언제 다시 변덕을 부릴지 모르나, 상식을 벗어난 전쟁 위협을 분별없이 일삼을 때는 지났다고 스스로 판단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으로서는 대화 제안의 허울과 실질을 잘 살펴, 그 진정한 의도에 걸맞게 대응할 일이다. 또 그러리라고 본다.
북의 담화에서 두드러진 대목은 한반도 비핵화를 '수령님과 장군님의 유훈'이라고 밝힌 것이다. 지난해 2· 29 북미 합의를 깨고 장거리 미사일 실험과 3차 핵실험을 단행한 뒤 핵보유국을 자처하는 것과는 분명 어울리지 않는다. 북한은 그 모순을 '미국의 핵 위협을 종식시킬 것을 목표로 내세운 비핵화'라는 논리로 설명하고 있다. 말이 어떻게 달라졌든, 미국의 체제 위협을 핵보유 명분으로 삼는 기본입장은 변함이 없다. 미국에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과 핵 없는 세계 건설 등을 포괄적으로 논의하자고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북한은 잇단 '핵 도발' 뒤 전제조건 없는 북미 대화를 제안한 셈이다. 개성공단을 일방적으로 폐쇄하고는 아무런 원상회복 조치 없이 남북 회담을 제의한 것과 다를 게 없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의 진정성을 입증할 선행조치를 요구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북한이 응하지 않는다면, 상투적 '통미봉남'으로 국제 공조를 교란시키려는 술책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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