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식 통미봉남 전술… 한미중 겨냥한 3중 카드인 듯
-미국과 회담 가능성 과시해 우리 정부 압박/한중 정상회담 앞두고 “선 넘지 말라” 중국에 시그널 또는 ‘보여주기’용 제의일수도
-오바마행정부 핵심 의제 ‘핵 없는 세계’ 와 ‘김정일 유훈’ 거론하며 태도 변화 가능성도… 여전히 핵ㆍ경제건설 병행 안 굽히는데다 ‘토요일 밤’ 제의 진정성 의문도
16일 북한의 북미 당국 간 고위급 회담 제의는 당사국인 미국은 물론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을 겨냥한 다목적 카드라는 분석이 나온다. 비핵화를 연결고리로 한국과 공감대를 넓히고 있는 중국에 대해서는 “(한중 정상회담에서) 선을 넘지 말아 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한편 통미봉남(通美封南 ∙미국과의 실리적 외교를 지향하면서 남한의 참여를 봉쇄하는 북한의 외교전략)을 통해 한미동맹의 균열을 노린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비록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내세운 ‘핵 없는 세계’까지 거론하며 비핵화 문제를 회담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는 제스처를 취하긴 했지만 한 켠에선 여전히 핵ㆍ경제건설 병행 노선을 고집함으로써 회담 제의의 진정성 여부에 대해선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북한은 우리 정부와 격 문제로 당국회담이 무산된 지 5일 만에 미국과의 대화를 시도하면서 한국을 무시하려는 전형적인 통미봉남 전술을 들고 나왔다. 북한은 작년 2월 3차 북미 고위급회담에서도 우라늄 농축프로그램 중단 등의 합의 사항을 동시에 발표하는 등 ‘김정은식 통미봉남 전술’을 선보인 적이 있다. 이번 회담 제의도 미국과의 회담 여지를 보여줌으로 우리 정부에 압박을 가하는 한편 미국 중심의 대북 압박 구도를 흔들려는 포석일 수 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번 회담 제의 배경에 대해 “북한이 그 동안 계속 강조해 온 것처럼 핵 문제는 미국과의 직거래를 통해 푼다는 입장을 밝히는 한편 남북회담이 안 되면 미국과의 회담에 집중할 것임을 우리 정부에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은 미국에 대화 제의를 하면서도 우리 정부에 당국회담 무산 책임을 전가하는 동시에 대북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등 교란 전술을 병행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6ㆍ15공동선언 발표 13주년을 맞은 사설에서 “오늘 북과 남, 해외의 온겨레 앞에는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대원수님들의 간곡한 유훈인 조국통일을 하루빨리 실현하여야 할 중대한 과업이 나서고 있다”면서도 여전히 핵ㆍ경제건설 병진 노선을 고집했다.
27일 열릴 한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대북 지렛대 역할이 확대될 가능성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에 대화를 제의한 배경도 주목된다. 일단 대화를 강조하는 중국에 “우리는 대화를 하려고 했지만 관련국들이 거부한다”는 ‘보여주기’식 행보일 수 있다. 또한 미국과의 대화를 통해 국제사회의 핵 해법을 균열ㆍ분산시키려는 의도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중국에 미국과의 회담 가능성을 과시함으로써 한국에 지나치게 기울지 말라는 메시지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미중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회담 제의가 나왔다는 점에서 중국 측과 사전 조율됐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물론 북한이 이번에 대화를 제의하면서 ‘비핵화는 김일성ㆍ김정일의 유훈’으로 명시하는 등 입장 변화 가능성을 시사한 측면도 있다. 포괄적 논의가 가능한 고위급 회담을 제의하고 중대 담화란 형식을 취하면서 회담 제의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뜻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을 향해 던진 메시지임에도 현지 시각으로 토요일 밤에 대화를 제의한 것을 두고 진정성이 떨어진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적지 않다. 유호열 교수는 “비핵화가 미국이 원하는 목표라곤 해도 미국이 별도의 대화 창구를 통해 회담 내용을 수용할 만한 조건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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