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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의 달인’ 로우하니 이란 새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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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의 달인’ 로우하니 이란 새 대통령

입력
2013.06.1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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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디네자드와 논쟁 끝에 핵협상 대표서 물러나

이슬람혁명 참여, 라프산자니·하메네이와 친분(5매 세컨)

하산 로우하니(64ㆍ사진) 당선인의 별명은 ‘외교의 달인’이다. 최고국방위원회 위원, 대통령 국가안보자문, 최고국가안보위원회 사무총장, 핵 협상 수석대표 등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그가 역임한 자리들이다.

외교안보 분야의 화려한 경력뿐만 아니라 핵 협상 수석대표로서도 그는 국민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002년 이란 핵개발이 세계의 주목을 받자 이듬해 초대 핵 협상 수석대표를 맡은 로우하니는 2004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를 피하려고 우라늄 농축을 한시적으로 중단했다. 2005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취임 이후 대통령과 수 차례의 논쟁 끝에 핵 협상 수석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일화는 유명하다. 서방에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아마디네자드의 강경 기조와 양보할 것은 양보해 제재를 피하면서 핵개발을 지속해야 한다는 그의 유화 노선이 충돌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로우하니는 국제 문제에서 강경 일변도인 아마디네자드에 저항하는 중도파 인사로 입지를 굳혔다.

사데크 지바칼람 테헤란대 정치학 교수는 15일 아랍권 위성방송인 알자지라와의 대담에서 “로우하니가 핵협상 수석대표이던 시절 이란은 핵개발을 진행하면서도 서방제재를 피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종 대선후보 6명 중 유일한 성직자인 그는 1948년 셈난주(州) 소르케에서 태어났다. 10대 시절 곰 신학원과 셈난 신학원에서 수학했고, 팔레비 왕조의 ‘샤(국왕)’에 반대하는 반(反) 샤 인물로 성장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반 샤 연설을 하면서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주목을 받았다. 1972년 법학으로 테헤란 대학을 졸업한 뒤 영국 글래스고 칼레도니언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졸업 후 샤 왕조의 체포를 피해 프랑스로 도피한 그는 파리에서 망명 중이던 호메이니와 합류, 훗날 혁명 주도 세력의 일원이 된다. 현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와 중도파 거물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와의 인연은 여기서 시작됐다. 로우하니는 최고국가안보위원회에서 하메네이의 대리인을 역임했을 정도로 최고지도자의 신임이 두텁다. 보수 성직자, 군부와도 원만하다.

황유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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