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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고민하는 힘·다른 삶 살아갈 용기 키워… 내 인생 만드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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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고민하는 힘·다른 삶 살아갈 용기 키워… 내 인생 만드는 중"

입력
2013.06.1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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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웠던 '학교 밖 세상'대학·군대·사회의 위계질서가 학교서 배운 세계관과 충돌살며 고민하며 배우며대안교육 활동가·교사·주부·창업 지원가·해외영업사원 등 활약16명 중 상당수 대학 진학'대학 안 가도 행복한 삶' 보여 줄 명확한 롤 모델 아쉬워

이은희씨는 15년 전 경남 산청 간디학교에 처음 간 날을 생생히 기억했다. "네모난 건물에 양복 입은 선생님을 상상하고 갔는데 건물은 학교 같지 않은 돌집이었고 선생님은 양말도 안 신고 계셨어요. 선입견이 완전히 깨졌죠."

그렇게 학교와 선생님들에게 반한 이씨 등 동기생 20명은 1998년 첫 정부 인가 대안교육 특성화 고교인 간디학교에 입학했다. 일반 고교로 전학하거나 휴학한 이는 4명. 나머지 16명이 2001년 2월 간디학교의 첫 졸업생이 됐다. 이영석씨는 "기쁨보다는 슬픔이 앞섰다. 정든 곳을 떠나는 게 싫었고 간디학교 울타리를 벗어나는 게 조금은 무서웠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 졸업생들이 이제 서른 즈음이 됐다.

대안교육 첫 기수인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까. 간디학교가 1기 졸업생들의 삶에 남긴 흔적의 크기와 무늬는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지난 15년 세월에서 간디학교 3년이 차지하는 무게는 여느 고등학교를 나온 이들의 그것과는 달라 보였다.

다르게 살아갈 힘

태국에 살고 있는 이영석씨는 직접 대안교육 활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생태마을 조성기업인 '에듀코빌리지'가 운영하는 '피스캠프'에서 대안교육 학생 대상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그는 이메일을 통해 "간디학교에 가기 전까지는 시스템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았다. 간디학교에서 대안적 삶을 알게 됐고 다른 삶을 살아갈 용기를 기를 수 있었다"고 했다. 2009년 결혼한 그는 혼수와 신혼 집 마련 비용을 아껴 신혼여행으로 1년간 세계일주를 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이은희씨도 산청 간디학교의 자매학교인 제천 간디학교에서 2년간 영어 교사로 일했다. 결혼하면서 교사를 그만둔 그는 곧 셋째 아이를 낳는다. 그는 "간디학교에서 커서 무엇이 되는가보다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하다고 배웠는데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키우고 싶다. 공부에 쫓기지 않고 나이에 맞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리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서영씨도 간디학교에 교사로 돌아갈 결심을 하고 대학에서 교직을 이수하며 간디학교에서 교생실습까지 했다. 그는 졸업 직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계획을 미뤘다. 그는 "고민을 많이 하다가 결국 사랑을 택했다. 나중에라도 기회가 되면 간디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정유림씨는 간디학교에서 만난 연극과 자연을 따라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원래 소극적인 편이었는데 간디학교에서 표현예술이라는 수업을 통해 남들 앞에서 표현을 한다는 게 소중하다는 걸 느꼈고 연극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도 했다"는 그는 경기대 스타니슬랍스키 연기원에 진학, 극단에서 활동했다. 지금은 전남 장흥의 한 초등학교에서 계약직 교사로 일하며 생태체험 동아리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그는 "10년간 연기를 하면서 좀 지친 데다 쉬고 싶기도 해서 뉴질랜드로 떠났다. 지난해 귀국해 무엇을 할까 고민을 했다. 고향은 부산이지만 간디학교에서 텃밭 가꾸고 농사를 지은 경험이 강렬하게 남아있어 자연스럽게 농촌에 관심을 갖게 됐다. 간디학교 학부형이었던 분과의 인연으로 장흥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스스로 선택하는 삶

어릴 때부터 미술에 흥미가 많았던 박소현씨는 대학원에서 문화예술경영을 전공하고 인천문화재단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도시에서 자란 도시형 인간인데 산 속 간디학교에 다녔다고 그런 성향까지 바뀌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할 때 어떻게 자기를 진실하게 볼 것인지 고민하는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박준욱씨도 "타인의 시선이나 부모님의 의견을 따르는 경향이 있었는데 학교에서 스스로 결정을 하고 책임을 지는 것을 익혔다. 아직도 의사결정은 그때 배운 힘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로를 놓고 디자인과 복지 사이에서 고민하다 복지를 택한 박씨는 한신대 재활학과를 졸업하고 경기도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일한다.

대학 연극영화과를 나와 방송 쪽에서 일하던 정영림씨는 20대 중반에 다시 대학입시를 치렀다. 2008년 심리학과 새내기로 입학한 그는 지금은 임상심리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간디학교에서 세상을 사는 유연성이랄까 그런 것을 기른 것 같다. 학교에서 선생님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게 아니다 싶은데 붙잡고 있어서 좋을 게 없다는 확신이 있다"고 말했다.

대안이 아닌 사회

졸업생 중 몇몇은 학창시절 인상岵?기억으로 양희규 교장의 체벌사건과 그 해결 과정을 떠올렸다. 양 교장은 1998년 2학기 초반 전교 등반행사에 늦게 나와 다른 사람들을 오래 기다리게 한 학생들을 때렸다. 당시 이 사건은 간디학교 특유의 학생 중심 의사결정 기구인 식구총회에서 논의됐다. 양 교장은 자신의 행위를 사과했고, 학생들은 양 교장과 해당 학생이 함께 학교 인근 산을 등반하는 처벌을 결정했다. 권택우씨는 "문제가 있으면 함께 토론하고 잘못을 하면 교장선생님도 징계를 받는 간디학교의 문화가 좋았다"고 했다. 대학에서 중문학을 전공하고 무역회사에서 해외영업을 담당하는 그는 "군대도 갔다 왔는데 우리 사회에는 위에서 시키면 무조건 해야 하는 문화가 있다. 학교 때는 마음껏 토론을 할 수 있지만 밖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졸업생들은 간디학교의 교육 목표인 '사랑과 자발성'이 위계를 강조하는 사회 현실과 맞서는 경험들을 했다. 정유림씨는 "대학에서부터 이질감을 많이 느꼈다. 연극을 전공했는데 선배가 후배 군기를 잡곤 했다. 시끄럽게 부딪치는 편은 아니었지만 속으로 끙끙 앓았다. 내가 선배가 되고 동기들과 얘기해 문화를 바꿔보려고 했는데 나중에 다시 돌아갔다고 들었다"고 했다. 이은희씨도 비슷한 경험담을 털어놨다. "교육학을 전공했는데 교사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후배들에게 위계질서를 요구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이런 점이 1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하고 나중에 전공을 바꾸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

자신들을 가르쳤던 교사들과 비슷한 나이에 이른 1기 졸업생들은 이제 간디학교 경험을 비판적 거리에서 바라보고자 했다. 사단법인 '씨즈'에서 사회적 기업 창업을 지원하는 김한성씨는 "나를 비롯해 많은 동기들이 대학에 갔다. 대안교육을 받았지만 대학을 안 가면 답이 안 보이는 상황이었다. 선생님들도 다 대학 나왔고 외부 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을 안 나와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하려면 명확한 롤모델을 보여줬어야 했다. 지금 내 고민도 비슷하다. 사회적 기업을 하려는 이들에게 제시할 마땅한 모범사례가 드물어 고민이 된다. 그런 딜레마가 당시 선생님들한테도 있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간디학교에서 배운 세계관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긴다. 간디학교에는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 등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사회적 기업 활동을 하는데 후원기업은 큰 파트너다. 균형을 잡는다고 할까, 방법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살면서 배워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준욱씨는 "당시 우리는 수업을 듣지 않을 권리까지 누렸다. 우리가 첫 학생이다 보니 선생님들도 갈피를 제대로 못 잡은 면이 있었던 듯하다. 대안학교 수업은 일반 학교와 사뭇 달랐지만 그래도 수업이라는 이유로 집중해서 듣지 않기도 했다. 그 시간들을 소중하게 보내지 않고 써버린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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